허브이야기2023. 5. 2. 18:08

월간 일류도시대전 3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약초들의 어머니, 쑥

동서양의 전통의학에서 오래도록 활용되어 온 고마운 허브

 

 

단군신화 속 곰과 호랑이가 동굴 안에서 먹던 풀, 누구나 알고 있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고, 일상 속에서 수시로 접하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허브는 아마도 쑥일 것이다. 제철인 봄에 주로 즐겨먹지만, 쑥떡이나 쑥차처럼 쑥이 들어간 음식은 사시사철 쉽게 접할 수 있다.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사우나에서도, 뜸으로도, 향으로도, 모깃불로도.. 폭넓은 분야에 걸쳐 쑥은 요모조모 알차게 활용된다. 어떻게 보면 너무 자주 흔하게 만날 수 있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커다란 가치를 우리가 잘 눈여겨보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데서나 쑥쑥 잘 자라서 ‘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쑥의 학명은 ‘아르테미시아’, 그리스 신화 속 다산과 풍요의 신인 아르테미스로부터 비롯된 이름이다. 동서양을 아울러 전통의학의 긴긴 역사에서 쑥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고대 로마제국의 의사였던 갈레노스가 생리불순에 쑥을 처방했다는 기록이 있고, 로마의 군인들은 행군에 앞서 발병을 막으려고 샌들 안에 쑥을 넣었다고 한다. 중세 유럽 약초학자들에게는 ‘약초들의 어머니’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며 피부병 및 염증 치료에 쓰였고, 홉을 대신하여 맥주 제조에도 활용되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오래된 병과 하혈을 낫게 하며, 복통을 멎게 한다”고 언급되었으며, 중국의 이시진이 쓴 의학서 ‘본초강목’에도 '속을 덥게 하고 냉을 쫓으며 습을 없앤다'는 기록과 함께 상세한 처방이 안내되었다. 한편, 4세기 경 출간된 의학서 '주후비급방'의 개똥쑥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한 중국의 투유유 교수는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현대의학에 비하면 구식이고, 미신에 가까우며,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괄시받았던 전통의학이 투유유 교수의 수상 이후로 다시금 폭넓게 재조명받고 있다.

 

국화과 쑥속(Artemisia)에는 약 470여 종에 이르는 식물이 속해 있고, 우리나라에는 쑥, 사철쑥(인진쑥), 황해쑥, 개똥쑥 등 저마다 다른 특성을 지닌 쑥이 약 20여 종 이상 자생하고 있다. 봄철에 뜯어먹는 부드러운 어린 쑥을 ‘애쑥’이라고 부르고, 말려서 약재로 활용하는 쑥을 ‘약쑥’이라고 부른다. 쑥국이나 쑥떡처럼 음식으로 먹을 때는 단기간 적은 양을 섭취하므로 쑥의 종류에 대해 반드시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약으로 쓸 경우에는 꼭 원하는 목적에 알맞은 종류인지를 확인하고, 적절한 용법과 용량을 전문가와 상의한 후 복용해야 한다.

 

따뜻한 성질을 지닌 쑥은 피가 잘 순환하도록 돕고, 단백질, 칼슘, 비타민A·B2·C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면역력을 높여준다. 또한 섬유질이 장의 연동운동을 원활하게 해서 변비 해소를 돕고, 활성 산소를 억제하는 타닌 성분이 세포의 노화를 방지한다. 상쾌함이 느껴지는 독특한 향기는 시네올(cineole)이라는 성분에서 비롯되며, 유파틸린, 자세오시딘 등의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항염증, 항균작용을 돕는다. 특히 여성에게 이로운데, 생리불순을 낫게 하고 생리통을 완화시킨다. 소염 및 지혈작용을 해서 피부건조증이나 알레르기성 염증에도 도움을 준다. 야외 활동 중 벌레에 물렸을 때, 생잎 그대로 짓이겨서 가려운 부위에 바르면 통증과 가려움을 낮춰준다.

 

쑥을 캘 때, 혹은 구입할 때에는 반드시 매연이나 중금속에 오염되지 않은 땅에서 자란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요리 재료로 쓰려면, 쑥을 엷은 소금물에 잠시 담가놓았다가 여러 번 헹구어서 요리하면 푸른빛을 잘 살리면서 쓴맛을 없앨 수 있다. 싱싱할 때 최대한 빨리 섭취하는 게 좋지만 보관이 필요한 경우엔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보관하거나, 또는 한 번 먹을 분량씩 소분하여 냉동실에 보관할 수 있다. 습기가 남지 않도록 완전히 잘 말려 보관하면 두고두고 쑥차로 마실 수 있다.

 

쑥국, 쑥떡, 쑥버무리, 쑥라떼.. 많고 많은 쑥요리 중에서 무척 쉽고 간단해서 내가 가장 즐겨 만드는, 그리고 외국인 친구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았던 메뉴는 ‘쑥 부침개’, 영어로는 ‘mugwort pancake’이다. 어린 쑥 한 움큼을 가위로 대충 썰고, 묽은 밀가루 반죽에 섞은 다음, 넉넉히 기름을 두른 팬에서 중불로 노릇노릇 잘 부치면 10분도 걸리지 않아 근사한 한 접시가 뚝딱 완성된다. 쑥의 그윽한 향기를 고스란히 품은 채로 바삭바삭 고소하게 잘 부쳐진 ‘쑥 팬케이크’는 미국인 남편도, 일본인 이웃도, 대만인 친구도, 맛을 본 모두가 엄지를 척 치켜세우며 ‘정말 맛있다!’고 감탄하곤 했다. 재료비는 거의 공짜인 셈인데, 자연이 건넨 이 ‘쑥’이라는 선물 덕분에 특별한 맛을 모두에게 선사할 수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뿌듯해했고 고마워했다.

 

‘서양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을 약처럼, 약을 음식처럼 쓰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한의학에서도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음식은 한 뿌리라는 점을 줄곧 강조하고 있다. 동서양에 걸쳐 두루 이어져 온 이 놀라운 지혜를 즐겁게, 손쉽게, 그리고 맛있게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음식, 아니 약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올봄엔 쑥을 더 자주 접하며, 쑥과 더 친하게 지내보자. 쑥의 향기를 마음껏 음미하고 즐기는 동안, 건강이 절로 우리에게 찾아들지도 모른다.

 

 

 

글 강수희(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instagram.com/bear.tiger.herb)’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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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솔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