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일류도시대전 6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꽃의 여왕, 장미
역사 속에서 가장 사랑받아온 꽃
화사한 봄꽃들이 저물고, 초록빛이 짙어가는 초여름, 거리 곳곳의 담장에는 짙은 와인색 장미가 풍경을 수놓는다. 화려한 빛깔과 짙은 향기로 누구에게나 인기 만점인 장미도 자세히 알고 보면 ‘허브’, 다시 말해 ‘약이나 향신료 등으로 사용하는 식물’로 분류 가능하다. 정확한 쓸모를 잘 배워두면, 장미의 모습과 그 향기를 음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거두어서 실제 생활 속에서 이롭게 활용할 수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꾸준히 사랑받아온 ‘꽃의 여왕’ 장미의 역사와 활용법에 대해 다뤄본다.
“이름이 뭐가 중요할까? 그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장미는 똑같이 달콤한 향기가 날 것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구절이다. 장미를 몹시도 사랑한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들 곳곳에 총 50여 회 이상 장미를 등장시켰고, “Of all the flowers, me thinks a rose is best.” (모든 꽃들 중에서, 나는 장미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라는 말을 남겼다. 이렇듯 장미가 시인과 예술가들, 아니 모두의 칭송을 받으며 주목받아온 역사는 매우 넓고도 깊다.
기원전 2,000년 전 바빌로니아로부터, 고대 이집트, 그리스, 페르시아, 중국 등등 세계 곳곳의 고대 문명들마다 장미가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자신이 가는 곳 어디에서나 장미향을 맡고자 했고, 궁전을 장미로 가득히 채웠다. 로마에서도 장미가 큰 인기를 끌어서 대규모 공공 장미 정원이 만들어졌고, 승리한 군대를 장미꽃잎을 뿌리며 맞이했다. 폭군 네로는 분수대에서 장미 향수를 뿜게 했고, 장미 푸딩과 장미향 술을 즐기며 장미를 채운 베개를 썼다고도 한다. 로마가 멸망한 후 유럽에서는 사치와 호화로움의 상징이었던 장미의 인기가 살짝 수그러들었지만, 중동과 페르시아에서는 꾸준히 장미의 인기가 이어졌다. 11세기 초 페르시아의 철학자이자 의사였던 이븐 시나는 장미꽃잎에서 에센셜오일을 추출하는 수증기 증류법을 확립했고, 이는 아로마테라피의 시초가 되었다.
한편 중세 유럽에서는 왕가의 문장으로 쓰이며 ‘장미전쟁’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은 전 세계에서 200여 종이 넘는 진귀한 장미들을 수집하여 대규모 장미원을 세웠고 그 기록을 그림으로 남기도록 했으며 품종 개량을 지원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유럽 장미에 아시아 장미를 교배시킨 새로운 품종이 개발되었고, 이를 시점으로 무수히 많은 장미 품종 개발이 이어졌다. 활발한 육종 덕분에 장미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종류가 많은 식물 중 하나로, 해마다 200종 이상의 새로운 품종이 개발되고 있다.
오랜 역사에 걸쳐 이토록 커다란 사랑과 관심을 모아온 장미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겹겹이 겹쳐진 아름다운 꽃잎과 다채로운 빛깔, 그윽하면서도 깊은 향기, 뾰족한 가시와 우아한 자태 등등 이루 다 꼽기 어려운 장점들이 많지만 알고 보면 장미가 지닌 건강상의 효능 역시 뛰어나다. 항산화물질인 플라보노이드를 비롯하여, 비타민 A, B, C, E, K와 칼슘, 철, 인을 포함한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체내 섭취할 경우 염증을 감소시키고 면역력을 높여준다. 또한 세포 조직과 혈관을 수축시키는 수렴작용을 해서, 장미 성분이 함유된 물질을 피부에 바를 경우 주름 개선, 세포 재생 등 피부 건강에도 이로운 영향을 미친다.
식용으로도 장미를 알차게 활용할 수 있다. 싱싱한 장미꽃잎 그대로 샐러드에 넣으면 눈과 혀가 동시에 즐거워지고, 다른 허브나 과일과 함께 찬물에 오래 우려서 가벼운 느낌의 허브차로 마실 수도 있다. 살짝 말린 꽃잎을 따뜻하게 데운 꿀에 넣고 약 2주간 우려내면 장미향이 잘 배어나는데, 이 꿀을 차나 디저트에 곁들이면 은은한 장미향이 잘 어울린다. 또한 꽃잎을 식초에 넣어서 추출하면 장미의 약용 성분이 잘 우러난 장미향 식초가 되는데, 샐러드드레싱으로 활용하기에도 좋고, 희석시켜 헤어린스로 쓸 수 있다. 꽃잎을 습기가 남지 않게 바짝 잘 건조시키면 오랫동안 두고 마실 수 있는 꽃차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장미꽃잎 단독으로 마시기에는 향이 미약한 편이어서, 다른 허브들, 또는 홍차나 향신료와 잘 섞으면 풍미가 뛰어난 나만의 차를 만들 수 있다.
꽃집에서 판매하는 절화의 경우, 생산 과정에서 약품처리가 되었을 확률이 높으므로 식용으로 추천하지 않는다. 매연 등의 오염물질이 없는 곳에서 직접 채취한 신선한 장미, 또는 약재상에서 판매하는 건조된 장미꽃잎을 식용으로 쓸 수 있다. 채취 시기는 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때, 아침 이슬이 마른 직후의 오전 나절이 가장 좋고, 꽃봉오리 전체를 거두기보다 꽃잎 낱장을 따로 거두는 게 좋다. 건조시키기 더 쉬울 뿐 아니라, 남겨진 꽃 안쪽 부분이 익으면 열매가 되기 때문이다. 흔히들 장미와 별개라고 알고 있는 ‘로즈힙(rosehip)’이 바로 장미의 열매인데, 비타민이 매우 풍부해서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건강음료나 시럽, 디저트의 재료로 활용되어 왔다.
대전의 명물 한밭수목원에는 100여 종이 넘는 장미들이 모인 ‘장미원’이 있다. 각 구역의 장미들마다 이름도 모양도 빛깔도 다 달라서 하나하나 들여다볼수록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고, 짙은 장미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면 온몸의 세포가 깨끗이 정화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화사하게 피어난 장미들 사이에서,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느긋하게 걷는 6월의 산책,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대전 시민 모두가 향기로운 장미와 함께, 더욱 행복한 초여름을 맞이하시기를 기원한다.
글 강수희 (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bear.tiger.herb)’와 ‘코너샵(@hi_corner_shop)’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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