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지금은 없는 차2021. 4. 9. 00:15

 

 

안녕하세요! 어딜 봐도 파릇파릇 봄빛으로 가득한 4월입니다. 지난 2-3월에는 제가 잠시 구례5일시장에서 '시장매니저'로 일을 하게 되면서, 매일 출퇴근을 하며 꽤 분주하게 지냈습니다. 허브일에 몰두할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게 아쉬웠지만.. 대신 새로운 경험과 배움, 그리고 좋은 인연들을 얻을 수 있었기에, 돌이켜보니 부쩍 고마운 마음이 드네요.

 

구례5일시장에는 약재 가게들이 많습니다. 일하는 짬짬이 전국에서 모여든 온갖 약재를 둘러보고, 사장님들께 궁금한 것들을 요모조모 여쭤볼 수 있어서 참 좋았는데요, 그중에서도 구례의 대표적 특산품, (구례군 공식 캐릭터이기도 한!!)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무려 70% 가량을 차지한다는 산수유를 활용한 허브차를 만들어보기로 마음먹고서, 단골가게 두 곳에서 산수유를 넉넉히 구입해왔어요. 다정한 어르신 내외와 상냥한 아드님이 함께 운영하시는 '지리산 산채상회', 그리고 약재 전문 가게는 아니지만 산수유의 본고장 산동면에 살고 계신 사장님께서 직접 구해다 판매하시는 '참 맛있는 젓갈', 특히 젓갈집의 박옥순 사장님과는 오며 가며 수다를 나누고, 맛있는 것도 나누어 먹고, 그러면서 마음 잘 통하는 돈독한 친구가 되었답니다. 이 정답고 푸근한 가게, 인심 좋으신 제 '절친' 사장님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자세히 소개할게요.

 

 

새빨간 빛깔이 보석처럼 곱고, 여러모로 건강에도 이롭다는 산수유! 과연 차로 우리면 어떤 맛일까, 기대를 품고서 잘 우려보았는데, 아아.. 그 맛은 ... (*__*)a ... 시고 떨떠름하고 텁텁해서, 허브차로 만들기엔 영 까다롭겠다 싶었어요. 여기서 잠깐, 산수유의 효능에 대해서는 구례군청 홈페이지의 보도자료에서 빌려온 내용을 덧붙여봅니다.

 

"구례에서 생산되는 산수유는 엽산, 니아신, 사포닌, 사과산, 비타민C, 칼슘, 아연, 칼륨 등 유익한 영양분이 타 지역에서 생산되는 산수유에 비해 최대 3배 이상 검출되었다. 산수유 열매는 장복을 했을 때 활력을 주고 신체 기능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해독과 정화작용을 담당하는 간과 신장을 강하게 하여 배뇨장애, 이명, 풍기 제거에 효능이 있고 강장효과가 뛰어나다. 동의보감에는 산수유 열매를 신장계통 및 고혈압, 당뇨병, 부인병 등 각종 성인병에 좋은 약재로 기록하고 있다."

 

산수유의 이 뛰어난 효능을 잘 살리고 거들면서, 또 색다른 맛을 더해줄 조연으로는 강화도에서 온 약쑥을 골랐습니다. 산수유처럼 따뜻한 성질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개성 있는 맛으로 산수유 특유의 시고 떫은 느낌을 잘 보완해줄 것 같았거든요. 강화 약쑥에 대한 설명 역시 인천광역시 '인천특산물' 페이지에서 가져온 내용을 올려봅니다. 

 

"강화 약쑥은 사자발쑥이라 불린다. 쑥잎의 생김새가 꼭 사자발 모양으로 갈라져서 마디마디 착생하고 뒷면에 흰 털이 나 있기 때문이다. 강화 약쑥은 한약재 도매시장인 서울 제기동의 경동시장에서도 제일로 친다. 쑥의 신성한 효험은 이미 단군신화에 웅녀가 마늘과 강화약쑥을 먹어 오래전에 입증됐다. 동의보감에는 이 쑥을 두고 '각종 부인병에 특효약'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 효능 : 지혈조경(월경과다, 자궁출혈, 임신출혈, 월경불순) / 심한지통(근육통, 신경통, 위통, 두통, 풍습관절통, 복통, 설사, 이질등) / 항균소염(훈연에 의한 환경소독, 혈관, 근육에 침투해 있는 병균소멸) / 위장병, 피부병, 호흡기질환, 감기 등등

 

 

이런 소개글을 읽다보면, 마시는 즉시, 호랑이 기운이 솟아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게 됩니다만, 사실은.. 한약방 탕약처럼 진하게 달이지 않고, 물에 가볍게 우려 마시는 허브티로는 단기간에 드라마틱한 약효를 기대하시면 안됩니다 ^^; 다만 진하게 우려서 하루에 여러 번씩 드신다면 바로 약효를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럴 경우 오히려 몸에 부담이 갈 수도 있으니, 자연스럽게, 천천히, 꾸준히 드시는 걸 권해드려요. 저는, 평소 자기 전에 그때 그때 몸이 필요로 할 것 같은 느낌의 허브차를 골라 마시는데요, 어떤 종류든 숙면과 휴식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소화가 잘 안 될 때는, 소화작용을 도와주는 타임, 펜넬, 민트 같은 허브들을 모아 평소보다 진하게 우려서 넉넉히 마시는데요, 그렇게 마시고 나면 차차 나아지는 편이더라고요. 요즘은 미세먼지와 꽃가루 때문인지 기관지가 쭉 깔깔한 느낌이 들어서, 염증을 막아주고 면역력을 높여주는 허브가 많이 들어 있는 차들을 골라 마시고 있습니다. 아, '곰손 약손'도 자주 마시는 편인데, 그러고보니 몇 달째 생리통이 아예 없는 채로 무척 건강히 잘 지내고 있네요 ;-)

 

다시 블렌딩 이야기로 돌아와서, 산수유와 쑥, 두 가지 주인공 재료만으로는 아무래도 쓰고 텁텁한 약초 느낌이 강해서, 제가 평소에 즐겨 쓰는 서양의 허브들을 더해가면서 맛을 더 순하게 다듬었어요. 먼저 소화가 쉽도록 도와주면서 또 항염 효과가 뛰어난 페퍼민트, 레몬그라스, 레몬버베나를 넉넉하게 더했습니다. 이 친구들의 산뜻하고 상쾌한 느낌은 좋지만, 무언가 색다른 맛이 덧입혀지면 좋겠다 싶어서, 겨우내 직접 말린 친환경 귤껍질도 더했습니다. 알러지 반응을 완화시키고,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또 달콤하면서도 산뜻한 느낌을 더해줄 엘더플라워와 홀리바질과 생강 조각과 레몬껍질도 넣었고요. 고운 파랑빛 수레국화를 더해서 마무리를 하고 나니, 알록달록 온갖 빛깔들이 모인 이 블렌딩 자체가 4월의 봄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네요. 맛은요, 산수유+귤피+레몬껍질의 상큼함을 바탕으로, 쑥의 은은함과 따스함, 그리고 민트+레몬그라스+홀리바질의 산뜻함, 살며시 여운을 남기는 생강과 카다멈의 이국적인 느낌이 두루 어우러집니다. 

 

 

 

 

 

 

 

 

 

차 블렌딩만큼이나 늘 어려운 건, 차가 지닌 느낌에 꼭 알맞으면서도 부르기도 쉽고 좋은 느낌을 안겨주는 마땅한 이름을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이번엔 다른 때보다 조금 더 수월하게 정할 수 있었는데요, 고마운 노래 '과수원길' 덕분이었습니다. 봄에 만든, 봄 느낌 그득한 차, 그러니 봄을 노래하는 노랫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겠다 싶어서 제가 좋아하는 여러 동요들을 흥얼흥얼 따라불러보았어요. 제가 어릴 때 살았던 동네 이름이 '가수원동'이었는데요, 그래서 제게는 유난히도 친숙한 노래, 요즘도 '과' 대신 '가'수원길이라고 부르게 되는 이 익숙한 노래의 가사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처음 알았습니다. 노트에 옮겨 적고, 천천히 따라부르면서 각각의 장면을 그려보았어요. 아카시아꽃은 아직이지만,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는 순간은 서시천의 벚꽃길에서 자전거로 달리며 늘 만났었고,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타고 솔솔' 불어오던 순간은 동네 매화나무 아래서 한껏 만끽했었고.. 이곳 구례에 머물고 있는 2021년 봄, 저만의 방식으로 즐겨온 봄이 이렇게 거울처럼, 가사에 담겨있어서 다시 만나게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다음 구절,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생긋', 어릴 땐 아무 감흥 없이 자동응답기처럼 신나게 따라불렀던 이 구절을 머릿속에 찬찬히 떠올려보니, 꼭 영화 속 장면처럼 그윽하고 잔잔하고 풍성한 느낌이 떠올랐습니다. 말없이, 그저 바람결에 불어오는 눈송이 같은 꽃잎과 그 향기를 맡으면서, 마주 보고서 생긋, 웃음 짓는 두 얼굴을 상상하는데 저도 따라 생긋, 웃게 되었습니다. '생긋'이라는 말은 또 얼마나 귀여운가요. 국어사전을 살펴보니 '눈과 입을 살며시 움직이며 소리 없이 가볍게 웃는 모양.'이라고 합니다. 살며시, 소리 없이, 가볍게, 그렇게 '생긋' 웃는 순간이 우리 모두에게 더더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차의 이름을 '마주보며 생긋'으로 정했어요. 이 글을 쓰면서도 쭉 그랬고, 앞으로 이 차의 포장지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적으면서, 또 이 차를 우리고 마실 때마다, 저는 아마 많이 '생긋'하게 될 것 같아요.  ;-)

 

 

 

 

생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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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솔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