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이야기2023. 5. 2. 18:09

월간 일류도시대전 4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봄날의 샛노랑 요정, 민들레

불청객 잡초가 아닌 요모조모 몸에 이로운 고마운 친구

 

 

말끔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하는 정원사들에겐 민들레가 원망의 대상이다. 부지런히 없애고 없애도 어디선가 날아와 다시 고개를 드는 불청객이기 때문이다. 논밭의 작물을 지키려는 농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눈에 들어오는 족족 뿌리째 뽑혀나가곤 하는 말썽꾼이다. 하지만 이렇게 홀대받는 민들레도, 아이들에겐 솜사탕 모양의 후후 불어 날리기 좋은 장난감이 되고, 약초를 활용하려는 이들에게는 두루 쓸모 많은 고마운 존재가 된다. 어떤 식물이 잡초인지 아닌지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이처럼 완전히 달라진다. 주어진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서 똑같은 식물이 잡초로 여겨지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다는 게 참 공교롭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잡초’란 무엇일까. ‘섞일 잡’에 ‘풀 초’로 이뤄진 ‘잡초’라는 단어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풀’이라고 국어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다. 일부러 심고 애써 돌봐야 자라는 작물에 비해, 스스로 번식하는 잡초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생명력은 잡초만의 놀라운 능력이자 생존수단이다. 땅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려서 적극적으로 영양분을 흡수하는 잡초에는, 재배된 작물에서 섭취하기 어려운 미네랄과 영양소가 풍부하다. 아무 생명체도 살지 않는 황폐한 땅에 기어이 찾아들어 뿌리를 뻗고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토질을 차차 회복시키는 역할도 한다. 잡초에 관한 어느 책의 제목처럼, ‘대지의 수호자’라는 이름이 꼭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살짝 벗어나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면, 잡초는 생태계 안에서 자기 몫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살아가는 하나의 구성원이다. 잡초를 마냥 미워하며 몰아내기보다, 마음을 열고, 더 자세히 알아보고, 쓸모에 맞게 활용한다면 어떨까. 훨씬 더 이롭고 즐거운 공존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길가, 들판, 산속, 심지어 아주 작은 틈새까지,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샛노랑 환한 얼굴의 민들레는 모든 부분이 다 약으로 쓰인다. 잎과 꽃, 뿌리에서부터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즙까지 어디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 약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해독작용이 뛰어나서 간에 이롭고, 혈당 조절 및 이뇨 작용을 돕는다. 열을 내려주고 염증과 붓기를 다스리는 효과가 있으며 소화기능을 원활하게 한다. 비타민과 미네랄, 항산화물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면역력을 높여주며, 줄기의 단면에서 나오는 하얀 즙은 벌레에 물렸을 때 가려움을 진정시키기 위해, 또는 사마귀를 없애기 위해 꾸준히 바르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렇듯 사람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 아닌 다른 존재들에게도 민들레는 두루 이로운 영향을 끼친다. 민들레 씨앗은 작은 새들의 먹이가 되고, 또한 이른 봄부터 개화하기 때문에 배고픈 꿀벌들에겐 어려운 시기의 소중한 영양 공급원이 된다. 꿀벌들을 유인하므로, 벌의 수분이 꼭 필요한 과일이나 채소는 민들레를 가까이 자라게 두면 더 활발한 수분이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 더해 땅속 깊이 뻗어나가는 민들레의 뿌리가 미네랄과 질소 등 풍성한 영양분을 위쪽으로 퍼뜨려서, 주변 작물들이 더 건강하게 자라게 된다.

 

순우리말인 ‘민들레’라는 이름은 ‘문’의 ‘둘레’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추정된다. 영어 이름 ‘dandelion’은 사자lion의 이빨dent이라는 의미인데, 삐죽빼죽한 잎의 톱니 모양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그리스, 로마에 걸쳐 두루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중세 수도원의 정원에서는 약용 및 요리용으로 재배되었다. 중국의 전통의학에도 ‘포공영’ 혹은 ‘포공초’라는 이름으로 여러 의학서에 등재되었다. 최근 들어 민들레의 약효가 널리 알려지면서 즙, 환, 추출물 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들이 유통되고 있으나, 검증된 절차를 거쳐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구입 전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민들레를 직접 채취하려면, 중금속 매연 등 오염 물질이 없는 청정 지역인지부터 먼저 확인해야 한다. 여린 잎은 생잎 그대로 먹어도 되지만, 특유의 쓴맛을 제거하고 싶다면 찌거나 데친 후 양념을 버무려 먹으면 좋다. 잎과 꽃은 잘 건조시켜 약재로 쓸 수 있고, 말린 뿌리를 덖은 후 잘게 썰거나 분쇄해서 ‘민들레 커피’로 마실 수 있다. 열을 가하면 신맛과 고소한 맛을 내는 이눌린 성분이 뿌리에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인데, 서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커피 대용품으로 활용되었고, 카페인 섭취를 줄이려는 이들에게 큰 관심을 얻고 있다. 한편 민들레 꽃과 잎, 뿌리를 소주나 보드카 등 도수 높은 알코올에 담가 장기 숙성시키면 '민들레술'이 된다. 이러한 담금술을 서양 허브의학에서는 ‘팅쳐tincture’ 라고 부르는데, 알코올에 약성을 잘 우려낼 수 있고, 장기 보관이 가능하며, 손쉽게 활용할 수 있어 가정의 상비약으로 줄곧 쓰였다.

 

단, 과잉 섭취 혹은 장기 복용할 경우 소화장애, 복통 등 신체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체질에 따라 간혹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으므로, 약으로 이용하려는 경우 사용 전 반드시 소량으로 테스트를 거치는 게 좋다. 그러나 민들레 자체에는 독성이 전혀 없으므로, 단기간 섭취할 경우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참고로 ‘민들레’는 민들레속 식물 전체를 포함한 명칭이고 우리나라에는 약 10여 종이 자생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살아온 토종민들레는 따뜻한 남부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고, 1900년대 초 유입되어 온 귀화식물 서양민들레가 지금은 훨씬 더 흔하다. 토종민들레는 4~5월 한 번만 꽃이 피지만, 서양민들레는 봄부터 초가을까지 여러 번 꽃을 피우며 더 널리 퍼져나가고, 도시 환경에 잘 적응하는 등 번식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토종민들레는 꽃 아래 총포가 꽃을 감싸는 형태, 서양민들레는 총포가 벌어져 있는 형태여서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모습이나 빛깔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특성이나 약효는 비슷한 편이다.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잡초란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아직 그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놀랄 만큼 커다란 가치를 품고 있는 민들레에게 올 봄,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보면 어떨까.

 

* 잡초와 더욱 친하게 지내고 싶을 때, 참고하면 좋을 책

- 잡초 치유 밥상 / 권포근 고진하 지음

- 고맙다 잡초야 / 황대권

- 전략가, 잡초 / 이나가키 히데히로

- 정원 잡초와 사귀는 법 / 히키치 가든 서비스

- 미움 받는 식물들 / 존 카디너

 

글 강수희(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instagram.com/bear.tiger.herb)’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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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솔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