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이야기2024. 2. 8. 17:59

월간 일류도시대전 12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온기를 전하는 따뜻한 계피

 

: 1224년 바그다드에서 제작된 디오스코리데스의 '약물지(De Materia Medica)' 아랍어 사본에 실려 있는 그림물약을 제조하는 의사.

 

 

계피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맵고 쓰다. 예닐곱 살 즈음, 할머니가 건네주신 계피사탕을 처음 맛보고 ‘어떻게 사탕인데 이렇게 매울 수가 있어!’ 화를 내며 뱉어버렸다. 거무튀튀한 수정과 역시 쓴 맛이 난다며 꺼려했고, ‘계피’라는 글자가 들어간 모든 음식을 피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 커피전문점에서 카푸치노를 맛보면서부터 그제야 조금씩 계피와 친해질 수 있었고, 이후 이국적인 요리를 좋아하게 되면서 인도의 가람 마살라 커리, 중국의 오향가루, 미국의 애플시나몬 케이크 등등 곳곳에서 계피를 만나며 점점 더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동서양 전역에 걸쳐 계피를 활용해온 역사는 무척 길고 그 활용 범위도 아주 넓다. 쌀쌀한 겨울날 따스함을 건네며 원기를 북돋아줄 향기로운 계피가 지난 1년간 이어진 ‘허브이야기’ 칼럼의 마지막 주인공이다.

 

먼저 ‘계피’, ‘육계’, ‘시나몬’, ‘카시아’ ‘카넬라’ 등 시나몬의 여러 이름과 정확한 분류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나라에서 흔히 ‘계피’라고 부르는 건 녹나무과 녹나무속 육계나무의 껍질을 뜻한다. 학명으로는 Cinnamomum cassia 이고, 영어로는 ‘카시아’, 또는 ‘중국 시나몬’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어린 가지는 ‘계지’, 가운데 부분만 모은 걸 ‘계심’이라고 하며 각각 다른 용도의 한약 처방에 쓰인다.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계피가루’는 이 육계나무, 카시아 계피의 나무껍질을 분쇄한 가루이며, 베트남이나 중국,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한편 ‘실론 계피’는 주로 스리랑카에서 생산되며 카시아 계피에 비해 가격이 훨씬 비싸다. 육계나무와 같은 녹나무속이지만 ‘실론계피나무’라는 다른 종이며, 학명은 Cinnamomum verum 인데, 여기서 verum 은 ‘참된 것’, ‘진정한 것’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실론 시나몬’, ‘트루 시나몬’, ‘스위트 시나몬’ 이라고 부른다. 이 글에서는 육계나무의 ‘카시아 계피’, 그리고 실론계피나무의 ‘실론 계피’를 필요에 따라 구분하며, 이들을 합쳐서 ‘계피’로 지칭한다.

 

카시아 계피는 맵고 알싸한 느낌이 세며 약효가 강한 편인데 반해, 실론 계피는 부드럽고 달콤한 느낌을 주며 약재로는 거의 쓰지 않고 제과 제빵에 주로 쓰인다. 특히 주의할 점은 카시아 계피에 다량 함유된 ‘쿠마린’ 성분인데,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간에 부담을 준다. 실론 계피의 쿠마린 함량은 높지 않지만, 모든 종류의 계피에 있어 공통적인 특징으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작용이 있어서, 평소 열이 많은 체질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드물게는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섭취하거나 장기간 복용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계피는 후추, 정향과 함께 주요 향신료로 매우 귀한 고급품으로 여겨졌다. 원산지인 인도 및 동남아 지역으로부터 극히 한정된 수량만이 험난한 경로를 거쳐 중동과 유럽으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무려 금과 상아에 맞먹을 정도로 값이 비쌌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방부 처리하고 향수를 만드는 데 쓰였으며, 그리스인들은 신전에 바치는 선물로 활용하였고, 로마에서는 은보다 15배가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로도 계속된 그 희소성과 높은 값어치 때문에 15~16세기 유럽의 탐험가들에게 신대륙을 찾아 나서게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옛 사람들에게 계피가 이토록 높은 인기를 끌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계피가 지닌 효능과 특징에 대해 살펴보면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맛과 쓴맛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계피는 음식의 맛을 한층 끌어올려주며, 항균 및 항바이러스 작용을 해서 육류의 부패 진행 속도를 늦춰준다. 또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혈액순환을 도우며, 위액 분비를 도와 소화가 잘 되도록 한다. 혈당을 알맞게 조절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 당뇨 및 성인병을 예방하는 역할도 한다. 또한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고, 염증을 완화시키며, 면역력을 높이고 호흡기 건강을 유지하도록 한다.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고 뇌의 활동을 증진시킨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어 있다.

 

이처럼 여러모로 이로운 역할을 하는 계피를 섭취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등 가족 및 친구들이 모일 기회가 많은 12월, 여럿이 한 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며 마시기 좋을 만한 세계 각국의 음료들을 모아 함께 소개한다. 온화하고 달콤한 매력의 계피와 더불어, 모두가 더욱 따뜻하고 포근한 겨울을 맞이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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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따뜻한 와인 (뱅쇼, 글루바인, 물드와인)

레드와인에 과일과 향신료를 넣고 끓여 만든 음료. 프랑스에서는 뱅쇼(vin chaud), 독일에서는 글루바인(gluhwein), 영국에서는 물드와인(mulled wine)으로 부르는데 모두 ‘따뜻한 와인’이라는 뜻이다.

- 만드는 법 : 주전자나 냄비에 달지 않은 레드 와인을 넉넉히 붓고, 계피, 정향, 클로브 등 다양한 향신료를 더한 후, 오렌지, 사과, 배, 귤 등 과일 조각을 추가하여 약한 불에 오랫동안 뭉근히 끓인다. 단맛을 원한다면 꿀이나 잼을 더한다. 오렌지껍질이나 귤껍질을 더하면 더 향이 풍성해진다.

 

2) 마살라 차이

인도식 밀크티. 힌디어로 차이는 ‘차’를 뜻하며, 마살라는 ‘향신료’를 의미한다. 직역하면 ‘향신료 차’, 상황에 따라 들어가는 향신료 종류나 재료의 비율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되도록 물과 우유를 동량 혹은 우유를 더 많이 넣고, 계피와 생강은 넉넉히 넣어야 더 맛이 좋다.

- 만드는 법 : 작은 냄비에 물과 홍찻잎을 넣고 끓이다가 계피, 생강, 카다멈, 후추, 팔각, 정향 등 다양한 향신료를 더해 잘 우러나도록 팔팔 끓인다. 우유 (혹은 두유)와 설탕을 넣고 좀 더 끓인 후 거름망에 걸러서 뜨겁게 낸다.

 

3) 모주

: 여러 한약재를 넣고 팔팔 끓여 향을 우러낸 막걸리. 원래는 술을 담그고 남은 술지게미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구입하기 쉬운 시판 막걸리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 만드는 법 : 냄비에 막걸리를 붓고 계피, 감초, 대추, 생강, 배, 칡 등을 골고루 넣은 다음 약불에 은근히 오래 끓인다. 흑설탕 혹은 과일청을 더해서 단맛을 적당히 조절한다.

 

 

글 강수희 (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bear.tiger.herb)’와 ‘안녕코너샵(@hi_corner_shop)’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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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설명  : 1915년 미국의 향신료 회사인 ‘맥코믹’에서 출간한 '향신료' 책에 실린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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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이야기2023. 11. 16. 17:47

 

월간 일류도시대전 11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사랑스러운 향기, 라벤더

향기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오래도록 널리 사랑받아온 허브

 

허브에 크게 관심이 없던 시절에도 ‘라벤더’라는 이름만큼은 익숙했다. 화장품이나 여러 생활용품의 이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었고, TV에서 본 연보랏빛 비단이 끝없이 펼쳐진 듯한 라벤더 농장의 풍경도 인상 깊었다. 허브 전문가를 위한 수업을 들으며 허브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후로는 아로마테라피, 허브티블렌딩, 허브를 활용한 생활용품 DIY 등등 여러 분야를 다뤄왔는데, 어디에서나 팔방미인처럼 주요 재료로 등장하는 허브가 바로 라벤더였다. 그도 그럴 것이 라벤더는 독성이나 부작용이 강하지 않으면서 다방면으로 유익한 작용을 해서 활용도가 넓고 인지도도 인기도 드높다. 모든 과목에 뛰어나면서 성격까지 좋은 모범생이라고나 할까. 깊어가는 가을날에 특히 잘 어울리는 맑고 깨끗한 향기, 라벤더의 역사와 특징, 그리고 아로마테라피를 통한 활용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라벤더가 인류와 함께해온 역사는 2,5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성경에는 라벤더의 그리스어 이름이었던 ‘Spikenard’ 혹은 ‘nard’로 여러 차례 등장하며, 고대 그리스에서는 수면제 및 진통제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로마인들은 라벤더의 항균 작용을 중시하여 세탁 및 목욕에 활용했는데, 라틴어로 ‘씻다(lavare)’ 라는 단어가 라벤더(lavender)의 어원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연결고리를 파악할 수 있다. 식물학자 디오스코리데스는 소화 불량, 두통 및 인후통 완화에 라벤더를 처방했고, 로마의 군인들은 상처 치료를 위해 장거리 행군 시 라벤더를 지참했다. 중세 시대에도 라벤더 사용의 전통은 계속되어서 공기 정화, 해충 방지, 종교 의식 등에 두루 쓰였으며, 13세기 영국에서는 라벤더를 정원에서 재배하는데 성공하면서 정원식물로 널리 번져나갔다. 16세기 영국의 약초학자 존 파킨슨은 라벤더에 대해 "모든 슬픔과 고통에 특히 이롭다“고 기록했는데, 여러 세기가 흐른 후 현대 의학에서도 라벤더의 우울증 및 불안, 스트레스 완화와 관련한 효능이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으니, 일찍이 그 특성을 뚜렷하게 파악한 옛사람들의 지혜가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라벤더의 가장 대표적인 품종은 ‘잉글리쉬 라벤더’ (Lavandula angustifolia), 이름과는 달리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으로, 앞서 언급했듯 오랜 시간에 걸쳐 영국의 정원에서 큰 사랑을 받았으며, 또한 서늘한 영국의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편이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일반적인 품종은 ‘프렌치 라벤더’ (Lavandula dentata) 인데, 잉글리쉬 라벤더보다 내한성이 낮은 편이다. 이외에도 약 30여 종의 다양한 품종들이 있으며, 품종개량 및 교잡종이 활발히 일어나서 정확한 가짓수는 파악이 어렵다. 다만 모든 품종의 라벤더들에 해당하는 특징은, 습기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건조한 지중해 지역이 원산지인 허브들이 대부분 그렇듯 비가 많고 습한 날씨가 오래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장마철을 잘 견디지 못하므로, 라벤더를 재배할 경우 반드시 과습 상태가 되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허브차, 포푸리, 팅쳐, 침출유 등 다양한 허브의 활용법 중에서, 이번 칼럼에서는 라벤더와 특히 연관이 깊은 ‘에센셜오일’을 활용한 ‘아로마테라피’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에센셜오일’이란, 식물로부터 추출한 휘발성 있는 화합물을 포함한 식물 농축액을 뜻하며, ‘정유’ 혹은 ‘방향유’라고도 한다. 원료가 되는 식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해당 성분이 식물체 안에 함유되어 있을 때보다 약 70~100배 이상 농축되어 있어서 작용성이 매우 강하며, 따라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액 그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치유 효과를 위해 피부에 직접 바를 경우엔 반드시 캐리어오일에 적정한 비율로 희석해서 사용해야 하며, 디퓨저를 활용하여 코로 흡입할 경우에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도록 용량에 주의해야 한다.

 

이처럼 사용법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주의할 점도 많지만, 아로마테라피를 제대로 활용할 경우 식물의 이로움을 생활 속에서 매우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다. ‘아로마(향기)+테라피(치료)’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의 화학자 르네 모리스 가테포세(René-Maurice Gattefossé)인데, 연구 도중 사고로 큰 화상을 입었다가 라벤더 에센셜오일을 상처에 바르며 치유된 걸 계기로 연구를 계속하여 1937년 ‘아로마테라피’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고, 이 책의 발간 이후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에서는 아로마테라피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대체의학의 한 분야로 뚜렷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로마테라피에 대한 관심이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지만, 전반적으로 정확한 지침 없이 과도한 사용을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에센셜오일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할 경우 간에 큰 부담이 되고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성인 기준 하루 총 사용량이 6~7방울이 넘지 않도록 조심해서 사용하도록 한다.

 

앞서 예로 든 화학자 가테포세의 경우에서처럼, 라벤더는 상처 치유 및 피부 조직 재생을 촉진시키며, 염증, 발진, 가려움을 개선시킨다. 비타민, 마그네슘, 칼슘 등의 영양성분이 풍부하고, 항산화 성분이 함유되어 면역력 향상 및 신경질환 예방 효과가 있다. 또한 항균, 방부, 진정 효과가 있고, 정신적인 면으로는 우울 및 불안한 감정을 다스리고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며 두통 완화에 도움을 준다. 특히 수면장애, 불면증에 도움이 되며 수면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발표되어 있다. 깊고 편안한 잠을 위해 라벤더의 치유 효과를 얻고 싶다면, 잠들기 전 디퓨저에 라벤더 에센셜오일을 떨어뜨려 확산시키거나, 라벤더가 함유된 따뜻한 허브차를 마시거나, 잘 마른 라벤더가 든 포푸리를 머리맡에 놓아두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라벤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보길 권한다.

 

점점 더 많은 논문 및 연구 결과가 라벤더의 효능을 입증하고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코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라벤더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왔다. 누구든 라벤더의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이렇듯 코에서 느끼는 향기는 단순한 ‘좋은 냄새’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신경회로를 통해 대뇌로 전달되어서 마음과 즉각적으로 연결되며, 코로 흡입된 분자는 폐에 도달한 후 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퍼져나가면서 신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향기로운 허브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이로움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더 많은 이들이 허브, 그리고 아로마테라피를 바르게 알고 제대로 활용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치유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를, 허브를 다루고 소개하는 허벌리스트로써 진심으로 소망한다.

 

 

글 강수희 (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bear.tiger.herb)’와 ‘안녕코너샵(@hi_corner_shop)’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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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이야기2023. 11. 16. 17:20

 

월간 일류도시대전 10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허브는 인류 문명의 역사와 함께 꾸준히 활용되어 왔다. 영어로 ‘약’을 뜻하는 ‘드럭(Drug)’은 ‘말리다’를 뜻하는 네덜란드의 고어 ‘Droge’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식물을 말려 약으로 썼던 전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식물에 관한 경험과 지식이 쌓여가면서 전통의학으로 발전했고, 이는 오늘날의 현대의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양의 허벌리즘, 동양의 한방의학, 인도의 아유르베다, 아메리카 대륙의 약초학까지.. 각각의 갈래마다 관점이나 특징은 조금씩 다르지만, 식물을 관찰하며 발견해낸 특징을 필요한 상황에 적용시켜 이로운 효과를 얻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다.   

이달의 주인공, 당귀는 동서양의 전통의학 양쪽에 두루 걸쳐 무척 활발하게 쓰였다. 옛날 중국에서는 아내가 전쟁에 나가는 남편에게 챙겨 보내면서, 당귀를 먹고 기운을 내어 반드시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했다는 전설에서 ‘마땅히 돌아오다‘는 뜻의 당귀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한편 영어 이름인 ‘안젤리카(Angelica)’는 라틴어로 ‘천사’라는 뜻으로, 중세 시기 역병이 돌던 때 한 수도사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 이 식물의 효험을 알려주었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이후 중세 유럽에서는 ‘성령의 뿌리 (Root of the Holy Ghost)’ 라고도 불리었는데, 무엇이든 치료할 수 있는 치유 효과와 더불어, 악령의 저주를 물리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인들의 바람처럼 무엇이든 다 치료할 수는 없지만, 당귀는 여러 분야에 걸쳐 폭넓게 이로운 작용을 해서 약으로 널리 쓰였고, 특히 여성에게 이로운 작용을 해서 ‘여성용 인삼’이라는 별칭까지 있다. 기본적으로 당귀는 혈액을 생성시키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데, 특히 혈액이 많이 모이는 자궁, 간, 심장 질환을 개선하는 데 쓰인다. 염증을 완화시키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 감기에 걸렸을 때에도 좋다. 또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활성화시켜 갱년기 여성에게 도움이 되며, 치매를 유발하는 성분을 억제하고 체내 활성산소를 제거하므로 노인 건강에도 이롭다. 면역력을 높여주고 피로회복을 도우며, 식욕부진이나 소화불량, 속쓰림, 구토 등 위장질환에도 효과적이다. 동의보감에 실려 있는 당귀를 사용한 처방은 500가지가 넘으며, 이는 감초, 생강과 함께 가장 많이 쓰인 약재들 중 하나이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쌍화탕’, ‘십전대보탕’에도 당귀가 들어가는데, 특유의 은은하고 그윽한 ‘한약 냄새’를 내는 주인공이 바로 당귀이다. 

세계적으로 당귀속 안에는 약 100여 종이 있는데, 이중 우리나라에서는 참당귀 (Angelica gigas), 일당귀 (Angelica acutiloba), 중국당귀 (Angelica sinensis) 가 재배되고 있다. 모두 미나리과 당귀속 식물이지만 종(種)과 외형이 다르고, 주요 성분도 조금씩 다르다. 참당귀는 붉은 꽃이 피며 잎의 맛이 달고 매운 편이고, 일당귀는 하얀 꽃이 피며 참당귀에 비해 잎의 초록빛이 더 짙고 윤기가 나며 특유의 향은 더 강하지만 매운 맛이 적고 재배가 더 쉬운 편이어서 쌈채소로 널리 쓰인다. 약효성분은 참당귀에 더 많아 약재로는 주로 참당귀의 뿌리가 많이 쓰인다.  

서양에서는 당귀의 개성 있는 향기를 향수, 술, 과자를 만드는 데 활용해왔다. 특히 당귀의 줄기를 데친 후 겉껍질을 벗겨내고 설탕에 절인 당절임(Candied angelica)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케이크와 과자의 장식으로 인기리에 활용되어 왔다. 국내에서는 쌈채소용 당귀 생잎만 유통될 뿐 싱싱한 꽃이나 줄기는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약재로 쓰이는 마른 당귀 뿌리는 한약 전문점이나 온라인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단독으로 마셔도 좋지만 생강, 대추, 천궁 등 잘 어울리는 다른 약재와 함께 차로 끓여 마시면 맛도 효능도 더욱 좋아진다. 대전역 앞 약재거리에는 오랜 역사를 품은 한약재 판매점들이 여러 군데 자리 잡고 있는데, 필요한 약재와 쓰려는 목적을 언급하면 성심껏 조언해주므로, 당귀를 직접 활용해보고 싶다면 약재거리 방문을 권장한다. 

맨앞에서 소개한 당귀의 특성이 그러하듯, 서양의 허브의학 그리고 동양의 전통의학 양쪽 모두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허브의 활용법 한 가지를 소개한다. 영어로는 ‘팅쳐(tincture)’, 쉽게 풀어쓴 우리말로는 ‘담금주’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알코올 용액에 장기간 허브를 담가 유효성분을 추출해내는 방식을 뜻한다. (알코올뿐만 아니라 식초나 글리세린에 우리는 것 역시 팅쳐에 속한다.) 팅쳐는 쉽게 변질되지 않아서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체내 흡수가 빠르며, 허브 그대로 섭취할 때보다 적은 양으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만드는 방법은 무척 간단하다. 도수 높은 소주나 보드카에 마른 허브를 넉넉히 넣고 2~3주 혹은 그 이상 우려내면 된다. 이 추출액은 액체로 된 약처럼 필요한 상황에서 소량씩 복용할 수 있고, 또는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을 만들 때 쓸 수 있다.  

필자의 아버지는 등산을 무척 좋아하셨다. 산에서 거둬온 솔잎으로 담금주를 만드시고 기분 좋게 드시던 그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레 허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닐까, 이 글을 적는 동안 새삼스레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자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품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부모님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이 ‘허브 이야기’ 칼럼 역시 누군가에게 자연에 대해, 허브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품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글 강수희 (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bear.tiger.herb)’와 ‘안녕코너샵(@hi_corner_shop)’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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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이야기2023. 8. 21. 17:51

월간 일류도시대전 8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왕의 허브, 여름의 허브, 바질

이롭고 향기로운 바질과 함께, 더 건강하고 맛좋은 여름을 누리자

 

 

피자나 파스타 위의 토핑, 초록빛 진한 바질 페스토, 얼마 전 유행했던 ‘바질김치’까지.. 허브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어딘가에서 맛을 보거나 적어도 ‘바질’이라는 이름만큼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특유의 짙은 향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바질은 ‘왕의 허브’라는 별명으로 불리었고, 내게는 ‘여름의 허브’로 각인된다. 유난히 추위에 약해서 늦봄까지는 성장이 매우 더디지만, 여름이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큼직한 잎사귀를 쑥쑥 키워나가기 때문이다. 또한 지치기 쉬운 무더운 날, 여러 요리와 음료에 쓰이며 기운을 북돋고 상쾌함을 선사하는 고마운 역할을 한다. 바질의 오랜 역사와 용도, 어떤 점에서 이롭고 좋은지, 그리고 똑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바질의 학명 ‘Ocimum basilicum’ 중 ‘Ocimum’은 ‘향기’와 연관이 있고, ‘basilicum’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왕’을 의미한다. 과연 그 이름답게 바질의 가장 큰 특징은 그 풍성한 향기이다. 바질의 전체적인 생김새는 수수하고 꽃도 자그마한 편이지만, 향기만큼은 무척 강렬해서 스치기만 해도 곧바로 그 향이 느껴진다. 시원한 듯 살짝 매운 느낌이 나고, 은은하게 달콤함이 퍼진다. 입에 넣고 씹으면, 향이 더 진해지면서 아주 작은 조각이어도 그 풍미가 입안을 한가득 채운다.

 

원산지는 인도 혹은 남아시아로 여겨지지만, 오래 전부터 바질은 유럽에 전해졌고 긴 역사에 걸쳐 꾸준히 활용되어 왔다.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는 바질이 영혼을 정화시키고 천국의 문을 열어준다고 여겨 죽은 이의 관에 넣는 풍습이 있었다. 이처럼 죽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일까, 중세 유럽의 약초학자들은 바질을 두려워하며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다’ ‘머릿속에 전갈이 자라게 할 수 있다’며 배척하기도 했다. 한편 인도에서는 ‘신성한 약초’로 칭송받으며 다른 어느 허브들보다도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바질의 다양한 품종들 중 하나인 ‘홀리바질’은 힌디어로는 ‘툴시’라고 불리는데, 감기 예방, 상처 치료, 소화제, 해독제, 방충제 등 다용도로 쓰였고 대다수의 가정에서 직접 재배해왔다. 인도의 전통의학 아유르베다에서는 몸, 마음, 정신에 명료함을 불어넣는 ‘허브의 여왕’으로 툴시를 정의하기도 한다.

 

이 ‘홀리바질’ 외에도 바질의 품종은 매우 다양하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이탈리아 요리에 많이 쓰이는 바질은 ‘스위트바질’이며, 태국 요리에 쓰는, 아니스 향이 강한 ‘타이바질’, 보랏빛 잎사귀의 ‘오팔바질’을 비롯하여, ‘레몬바질’ ‘시나몬바질’ 등등 세계적으로 약 150여 종류의 바질이 재배되고 있다. 바질은 햇볕을 잘 쬐어주고 통풍을 잘 시켜주면 전반적으로 잘 자라는 편이지만 습기와 추위에 매우 취약하다. 또한 수확 후 빠르게 시들고 물이 닿으면 바로 변색되는 등 유통 및 보관이 쉽지 않아서, 집에서 직접 재배하며 필요한 때마다 바로 따서 활용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건조바질 역시 간단히 쓸 수 있어 유용하긴 하지만, 막 거둔 신선한 생잎에 비하면 향기와 맛이 훨씬 덜하다. 요즘은 생활용품점에서도 바질 씨앗이나 화분을 쉽게 구입할 수 있으니, 관심이 간다면 직접 재배를 시도해보길 권한다.

 

바질을 가까이 두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이유는 아주 많다. 연구에 따르면 바질은 뛰어난 항바이러스, 항박테리아 및 항진균 특성이 있고, 체내 염증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비타민 A, 비타민 K, 철, 망간, 칼슘이 풍부하고, 플라보노이드, 카로티노이드 같은 항산화 물질이 함유되어 세포 손상을 예방하고 건강한 세포활동을 지원하며 면역력을 높여준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연물질 아답토젠의 작용으로 불안과 우울, 긴장을 감소시키고, 소화작용을 돕는 유효성분이 소화불량 및 팽만감을 줄여주며 장내 유익균을 늘려 장 건강을 개선시킨다. 혈당을 낮추어 당뇨를 예방하며, 호흡기 내에서 거담작용을 해서 기관지 건강에도 이로운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의학적 효능과 더불어, 무엇보다도 맛과 향기가 매우 훌륭하다.

 

바질을 요리에 활용할 때는, 열에 취약하고 향이 쉽게 날아가는 특성이 있으므로 불을 끈 후 마지막에 추가하도록 한다. 혹은 아예 생잎 그대로 섭취하며 바질의 향을 최대한 만끽하는 걸 권한다. 바질을 활용한 수많은 레시피 중 ‘바질 버터’는, 만드는 방법도 무척 쉽거니와, 빵에도, 파스타에도, 고기 요리에도 두루 잘 어울려서 널리널리 소문내고픈 메뉴이다. 신선한 바질잎을 잘게 썰고, 실온에 두어 말랑해진 버터에 잘 섞은 다음, 소금을 살짝 더하면 끝. 입구가 넓은 유리병을 준비해서 순서대로 담으면 만들기도, 이후 보관하기도 무척 편리하다. 단, 수분이 많은 생잎이 들어갔으므로 반드시 냉장보관하고, 일주일 안에 다 소비하도록 한다. 취향에 따라 레몬제스트나 말린 토마토를 더해도 좋고, 바질과 잘 어울리는 세이지, 로즈마리 같은 다른 허브를 더해도 좋다. 무더운 여름 ‘바질 버터’를 활용하여 이국적이고도 풍성한 여름의 맛을 즐겨보자. 더위에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이 ‘왕의 허브, 여름의 허브’ 바질의 상쾌한 맛과 향기 덕분에 싱싱하게 되살아날 것이다.

 

 

글 강수희 (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bear.tiger.herb)’와 ‘코너샵(@hi_corner_shop)’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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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이야기2023. 8. 21. 17:42

월간 일류도시대전 7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더위를 쫓는 시원한 민트

풍부한 ‘멘톨’ 성분으로 상쾌함을 선사하는 여름의 허브

 

 

여름철이면 특히 인기가 치솟는 허브가 있다. 상쾌함과 산뜻함, 청량감을 안겨주는 민트가 그 주인공이다. 민트 특유의 시원한 향기는 그저 들이마시기만 해도 콧속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바로 ‘멘톨’이라는 약효성분 때문이다. 치약, 가글, 사탕, 껌, 아이스크림.. 일상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민트의 유래, 역사, 효능, 사용법을 꼼꼼하게 살펴보자. 자세히 알고 나면 무더운 이 여름 시원한 민트와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민트(mint)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 속 요정 ‘민테’의 이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분류학적으로는 꿀풀과(Lamiaceae) 박하속(Mentha)에 약 20여 종의 민트들이 속해 있으며, 교잡으로 인한 수천 가지의 변종들이 존재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민트 종류로는, 워터민트와 스피아민트의 교배종인 ‘페퍼민트‘, 껌 이름으로 친숙한 ‘스피어민트‘, 은은한 사과향이 나는 ‘애플민트‘가 있다. 이외에도 잎 바깥쪽에 하얀 띠가 있는 ‘파인애플민트‘, 시트러스 향기가 풍기는 ‘오렌지민트‘, 초콜릿처럼 짙은 빛깔에 은은한 초코향이 나는 ‘초코민트‘, 약성이 매우 강해서 식용으로는 쓰지 않는 ‘페니로열민트‘, 그리고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자라온 ‘박하‘ 등이 널리 재배되고 있다. 이중 박하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면, ‘민트’의 우리말 이름이 ‘박하’여서 ‘박하속’이 되었는데, 이와 동시에 ‘박하’는 학명 Mentha canadensis 라는 ‘박하속’ 안에 있는 하나의 종을 의미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이 ‘박하’의 영어 이름은 Canada mint, American wild mint, East Asian wild mint, Chinese mint, Japanese mint 등으로 몹시 다양하며, 영어로 ‘Korean mint‘는 박하가 아니라 방아(배초향)을 뜻한다. 방아는 꿀풀과 배초향속으로 박하와는 사촌지간으로 볼 수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민트의 약효를 알고 필요한 곳에 적절히 활용해왔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 안에서도 발견되었고, 기원전 1550년 작성된 ‘에버스 파피루스‘는 민트를 소화제로 기록했으며, 로마인들은 연회장 장식 및 식후 음료로 민트를 활용했다고 한다. 중세 유럽 의학서에는 민트를 위장 질환의 치료제 및 구강 세정제로 처방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영국의 약초학자 니콜라스 컬페퍼는 1653년 발행된 의학서 ’The Complete Herbal‘에서 치통, 딸꾹질 등 40가지가 넘는 질병에 민트를 처방했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민트를 활용해왔다. 중국 송나라 시대의 의서인 ’본초도경‘은 신라인들이 박하를 재배하여 차로 달여 마신다고 기록하였으며, ’본초강목‘에서는 ’두통을 다스리고 중풍을 없애며 피로를 풀어주는 작용‘을 한다고 소개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도 박하를 "몸에 쌓인 열을 내려주고 땀을 내어 체내 독소를 배출하는 효능이 있다"고 다루었다.

 

동서양 조상들의 지혜를 이어받아, 우리도 올 여름 민트를 적극 활용해보자. 배가 아플 때, 속이 더부룩할 때, 체한 기분이 들 때, 딸꾹질이 날 때 등등 모든 종류의 위장 질환에 민트를 활용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멘톨을 비롯한 여러 약효성분이 위벽과 장벽의 근육을 진정시켜 소화불량을 완화시키며, 담즙 분비를 촉진함으로써 지방의 소화를 돕기 때문이다. 소화에 뭔가 문제가 있을 때, 민트 생잎 혹은 건조된 잎을 준비하여 넉넉한 양을 진하게 우려 마시면 확실히 속이 편안해질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인한 통증에도 민트가 유익한 효과를 보였다고 한다. 단순하게는 그저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이로움을 누릴 수 있다. 민트는 기억력과 주의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 또한 염증을 완화시키는 작용을 해서 피부에 바르면 발진을 진정시키고 냉각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열을 낮추는 성질로 인해 감기 및 인후염에 대한 치료제, 통증을 낮추는 역할로도 사용된다. 이처럼 치료 목적으로 민트를 활용할 경우, 약효성분이 고도로 집약되어 있는 에센셜오일(정유)을 사용하면 편리하지만, 절대 내복하거나 과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임산부, 영유아, 복용중인 약이 있는 경우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 상담하도록 한다.

 

한편, 부엌에서 민트는 이국적인 요리 재료가 된다. 무더운 지중해 및 중동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민트의 시원한 개성을 잘 활용해왔고, 그중에서도 특히 모로코는 전 세계 페퍼민트 생산량이 83%를 차지할 정도의 민트 대국이다. 개인적으로도 오래 전 중동 지역을 여행하던 때, 민트 생잎을 유리잔 가득 채워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 막 우려낸 민트차를 마셨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날씨는 너무 덥고 컵은 잡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데, 후후 불어가며 민트차 한 모금을 마시자마자 곧바로 청량감과 시원함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던 ‘이열치열’의 원리를 먼 나라에서 만났다는 게 신기하기도 반갑기도 했다. 이후로도 민트를 넣은 커피, 시원한 민트 레모네이드, 민트 생강차 등등 여러 민트 음료를 맛보며 점점 더 민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다양한 민트 레시피 중에서, 우리나라의 밑반찬처럼 인도 요리에 곁들여지는 사이드메뉴 ‘라히타’, 그리스 요리에서 소스로 쓰이는 ‘짜즈키’를 변형한 우리 집의 여름 반찬 레시피를 하나 소개한다. 재료는 민트, 오이, 플레인 요거트와 소금, 올리브유가 전부이다. 얇게 썬 오이를 살짝 소금에 절였다가 물기를 제거한 후, 요거트에 섞고, 잘게 썬 민트를 얹어, 올리브오일을 조금 뿌린다. 담담한 빵에 얹어 먹어도 좋고, 그리스에서처럼 고기 요리의 소스로 곁들여도 잘 어울리는 산뜻한 포인트가 된다.

 

민트는 재배도 무척 쉬운 편이다. 허브들 중에서 가장 키우기 쉬운 허브로 손꼽힐 정도로 민트는 번식력이 뛰어나고 강인하다. 혹시 밭에서 키울 경우에는 민트가 너무 많이 번져나가 다른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하기도 하므로, 별도의 용기를 땅속에 묻은 후 그 안에 심는 걸 권하기도 한다. 또한 다른 종류끼리 교잡이 쉽게 일어나는 편이어서 여러 종류의 민트가 있다면 나란히 심지 않도록 한다.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는 민트에 대해 “향기만으로도 영혼을 회복시키고 상쾌하게 하며, 맛은 식욕을 자극한다."고 적었다. 여름날 무더위로 몸도 마음도 쉽게 지치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허브가 아닐까. 민트와 더불어 모두 건강하고 상쾌한 여름을 맞이하길 바란다.

 

글 강수희 (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bear.tiger.herb)’와 ‘코너샵(@hi_corner_shop)’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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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이야기2023. 8. 21. 17:08

월간 일류도시대전 6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꽃의 여왕, 장미

역사 속에서 가장 사랑받아온 꽃 

 

화사한 봄꽃들이 저물고, 초록빛이 짙어가는 초여름, 거리 곳곳의 담장에는 짙은 와인색 장미가 풍경을 수놓는다. 화려한 빛깔과 짙은 향기로 누구에게나 인기 만점인 장미도 자세히 알고 보면 ‘허브’, 다시 말해 ‘약이나 향신료 등으로 사용하는 식물’로 분류 가능하다. 정확한 쓸모를 잘 배워두면, 장미의 모습과 그 향기를 음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거두어서 실제 생활 속에서 이롭게 활용할 수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꾸준히 사랑받아온 ‘꽃의 여왕’ 장미의 역사와 활용법에 대해 다뤄본다.

 

“이름이 뭐가 중요할까? 그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장미는 똑같이 달콤한 향기가 날 것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구절이다. 장미를 몹시도 사랑한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들 곳곳에 총 50여 회 이상 장미를 등장시켰고, “Of all the flowers, me thinks a rose is best.” (모든 꽃들 중에서, 나는 장미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라는 말을 남겼다. 이렇듯 장미가 시인과 예술가들, 아니 모두의 칭송을 받으며 주목받아온 역사는 매우 넓고도 깊다.

 

기원전 2,000년 전 바빌로니아로부터, 고대 이집트, 그리스, 페르시아, 중국 등등 세계 곳곳의 고대 문명들마다 장미가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자신이 가는 곳 어디에서나 장미향을 맡고자 했고, 궁전을 장미로 가득히 채웠다. 로마에서도 장미가 큰 인기를 끌어서 대규모 공공 장미 정원이 만들어졌고, 승리한 군대를 장미꽃잎을 뿌리며 맞이했다. 폭군 네로는 분수대에서 장미 향수를 뿜게 했고, 장미 푸딩과 장미향 술을 즐기며 장미를 채운 베개를 썼다고도 한다. 로마가 멸망한 후 유럽에서는 사치와 호화로움의 상징이었던 장미의 인기가 살짝 수그러들었지만, 중동과 페르시아에서는 꾸준히 장미의 인기가 이어졌다. 11세기 초 페르시아의 철학자이자 의사였던 이븐 시나는 장미꽃잎에서 에센셜오일을 추출하는 수증기 증류법을 확립했고, 이는 아로마테라피의 시초가 되었다.

 

한편 중세 유럽에서는 왕가의 문장으로 쓰이며 ‘장미전쟁’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은 전 세계에서 200여 종이 넘는 진귀한 장미들을 수집하여 대규모 장미원을 세웠고 그 기록을 그림으로 남기도록 했으며 품종 개량을 지원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유럽 장미에 아시아 장미를 교배시킨 새로운 품종이 개발되었고, 이를 시점으로 무수히 많은 장미 품종 개발이 이어졌다. 활발한 육종 덕분에 장미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종류가 많은 식물 중 하나로, 해마다 200종 이상의 새로운 품종이 개발되고 있다.

 

오랜 역사에 걸쳐 이토록 커다란 사랑과 관심을 모아온 장미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겹겹이 겹쳐진 아름다운 꽃잎과 다채로운 빛깔, 그윽하면서도 깊은 향기, 뾰족한 가시와 우아한 자태 등등 이루 다 꼽기 어려운 장점들이 많지만 알고 보면 장미가 지닌 건강상의 효능 역시 뛰어나다. 항산화물질인 플라보노이드를 비롯하여, 비타민 A, B, C, E, K와 칼슘, 철, 인을 포함한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체내 섭취할 경우 염증을 감소시키고 면역력을 높여준다. 또한 세포 조직과 혈관을 수축시키는 수렴작용을 해서, 장미 성분이 함유된 물질을 피부에 바를 경우 주름 개선, 세포 재생 등 피부 건강에도 이로운 영향을 미친다.

 

식용으로도 장미를 알차게 활용할 수 있다. 싱싱한 장미꽃잎 그대로 샐러드에 넣으면 눈과 혀가 동시에 즐거워지고, 다른 허브나 과일과 함께 찬물에 오래 우려서 가벼운 느낌의 허브차로 마실 수도 있다. 살짝 말린 꽃잎을 따뜻하게 데운 꿀에 넣고 약 2주간 우려내면 장미향이 잘 배어나는데, 이 꿀을 차나 디저트에 곁들이면 은은한 장미향이 잘 어울린다. 또한 꽃잎을 식초에 넣어서 추출하면 장미의 약용 성분이 잘 우러난 장미향 식초가 되는데, 샐러드드레싱으로 활용하기에도 좋고, 희석시켜 헤어린스로 쓸 수 있다. 꽃잎을 습기가 남지 않게 바짝 잘 건조시키면 오랫동안 두고 마실 수 있는 꽃차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장미꽃잎 단독으로 마시기에는 향이 미약한 편이어서, 다른 허브들, 또는 홍차나 향신료와 잘 섞으면 풍미가 뛰어난 나만의 차를 만들 수 있다.

 

꽃집에서 판매하는 절화의 경우, 생산 과정에서 약품처리가 되었을 확률이 높으므로 식용으로 추천하지 않는다. 매연 등의 오염물질이 없는 곳에서 직접 채취한 신선한 장미, 또는 약재상에서 판매하는 건조된 장미꽃잎을 식용으로 쓸 수 있다. 채취 시기는 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때, 아침 이슬이 마른 직후의 오전 나절이 가장 좋고, 꽃봉오리 전체를 거두기보다 꽃잎 낱장을 따로 거두는 게 좋다. 건조시키기 더 쉬울 뿐 아니라, 남겨진 꽃 안쪽 부분이 익으면 열매가 되기 때문이다. 흔히들 장미와 별개라고 알고 있는 ‘로즈힙(rosehip)’이 바로 장미의 열매인데, 비타민이 매우 풍부해서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건강음료나 시럽, 디저트의 재료로 활용되어 왔다.

 

대전의 명물 한밭수목원에는 100여 종이 넘는 장미들이 모인 ‘장미원’이 있다. 각 구역의 장미들마다 이름도 모양도 빛깔도 다 달라서 하나하나 들여다볼수록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고, 짙은 장미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면 온몸의 세포가 깨끗이 정화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화사하게 피어난 장미들 사이에서,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느긋하게 걷는 6월의 산책,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대전 시민 모두가 향기로운 장미와 함께, 더욱 행복한 초여름을 맞이하시기를 기원한다.

 

 

글 강수희 (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bear.tiger.herb)’와 ‘코너샵(@hi_corner_shop)’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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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솔밧
허브이야기2023. 5. 2. 18:09

월간 일류도시대전 5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바다의 이슬, 로즈메리

기억력을 높여주는 서양 허브의학의 ‘만병통치약’

 

 

‘허브’ 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연둣빛 허브차, 향기로운 에센셜오일, 아로마테라피 마사지, 실내용 디퓨져, 기능성 화장품과 건강식품... 허브 사용의 여러 갈래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가까이에서 허브를 만날 수 있는 수단은 식물원이나 꽃집에서 판매하는 작은 허브 화분을 통해서일 것이다. 글쓴이 역시 어린 시절 동네 화원에서 작은 화분을 구입하면서 허브를 처음 접했다. 크기도 작고 영 수수해 보이는데, 살짝만 잎을 스쳐도 산뜻한 향기가 강렬하게 풍겨온다는 게 무척 신기하고 놀라웠다. 바질, 민트, 라벤더, 로즈메리..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허브들 중에서, 가정에서 재배하기에 어렵지 않은 편이고, 다년생이어서 오랫동안 두고 기를 수 있으며, 생활 속에서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로즈메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로즈메리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이슬(ros)+바다(marinus), 즉 ‘바다의 이슬'이라는 뜻으로, 바닷가에서 잘 자라는 데다, 연푸른 빛깔의 작은 꽃들이 활짝 핀 모습이 마치 이슬이 맺힌 모습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기원전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석판에 언급되었을 정도로 인간과 함께해 온 역사가 매우 깊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도 로즈메리 가지가 발견되었으며, 그리스의 식물학자 디오스코리데스가 쓴 의학서 ‘약물지(De Materia Medica)’에도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서기 800년 경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대제는 ‘영지 관리에 관한 법령집’을 발표하면서 로즈메리를 포함한 100여 종의 허브와 채소, 유실수를 심도록 권장하였는데 이는 유럽 전역에 허브가 더 널리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오랜 시간에 걸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로즈메리는 특별한 순간의 상징적 존재로도 활용되었다. 맹세, 서약, 충실함의 징표로써 결혼식에 쓰이며 신부의 화관을 장식했고, 장례식에서는 ‘망자에 대한 영원한 기억’의 의미로 관 위에 놓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에도 등장한다.

 

이처럼 이야기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로즈메리에는 기억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몸 전체의 순환 작용을 활발하게 하며, 특히 뇌에 혈액과 영양, 산소를 공급하여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신경세포의 사멸을 줄여 알츠하이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강력한 항염증,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고, 근육통을 완화시키며, 혈압과 혈당을 알맞은 범위로 조정한다. 소화 기능 및 간 기능을 원활하게 해서, 팽만감 및 경련을 완화시키고 지방 연소를 촉진시켜 식사 후 마시는 차로도 적합하다. 항산화 및 수렴 작용은 모발과 피부의 손상과 노화를 막아주며, 상처의 치유에도 도움이 된다. 17세기 영국의 약초학자 니콜라스 컬페퍼는 “모든 종류의 감기, 건망증, 두통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로즈메리를 설명하기도 했다.

 

꿀풀과에 속하는 다년생 상록관목인 로즈메리의 고향은 지중해 연안,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지만 추위에도 강한 편이어서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한국의 추운 겨울에도 실내에 두고 잘 관리한다면 여러 해에 걸쳐 계속 키울 수 있다. 가뭄에도 강한 편이어서, 물주기를 자주 깜빡하는 식물 집사에게도 알맞다. 다만 과습을 매우 싫어하므로 물을 너무 자주 주지 않는 편이 좋고, 실내에 둘 경우엔 반드시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곳이어야 한다.

 

수확한 로즈메리 잎은 생잎 그대로, 혹은 잘 말려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향이 무척 강한 편이어서, 요리에 쓸 때는 아주 적은 양부터 시작해서 필요한 정도로 양을 조금씩 늘려가는 편이 좋다. 모든 종류의 육류와 잘 맞는 편이지만 담백한 느낌의 가금류, 그리고 뿌리채소와 잘 어울리는데, 허브를 활용한 요리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보자에게 가장 추천하는 메뉴는 간단한 ‘로즈메리 감자구이’이다. 한입 크기로 잘게 자르거나 채썬 감자에 버터나 오일, 적당량의 소금과 후추를 버무린 후, 로즈메리 잎을 고루 뿌려서 오븐이나 프라이팬에 구워내면 된다. 늘 먹는 밥을 독특한 방식으로 조리해보고 싶다면 ‘로즈메리 밥’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평소처럼 밥을 하되, 손가락 길이의 로즈메리 마른 가지 2~3개와 소금 몇 자밤, 올리브 오일을 넉넉히 둘러 조리하면 서양 요리에 잘 어울리는, 로즈메리 풍미가 향긋한 밥이 된다. 잘 마른 로즈메리 가지를 식초에 넣어 3~4주 동안 우리면 ‘허브식초’가 되는데, 샐러드 드레싱으로 적합하다. 같은 방식으로 오일에 넣어 우린 ‘허브오일’ 역시 파스타용, 드레싱용으로 두루 활용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자세한 배경이나 활용법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로즈메리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하나의 허브 안에 이토록 오랜 역사와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허브를 생활 속에 가까이 두고, 그 이로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수천 년 넘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대대로 쭉 이어져온 ‘식물과 함께 하는 삶’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이 이끌린다면, 로즈메리의 산뜻한 향기와 함께 당신만의 첫 발걸음을 시작해보면 어떨지.

 

 

글 강수희 (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bear.tiger.herb)’와 ‘코너샵(@hi_corner_shop)’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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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이야기2023. 5. 2. 18:09

월간 일류도시대전 4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봄날의 샛노랑 요정, 민들레

불청객 잡초가 아닌 요모조모 몸에 이로운 고마운 친구

 

 

말끔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하는 정원사들에겐 민들레가 원망의 대상이다. 부지런히 없애고 없애도 어디선가 날아와 다시 고개를 드는 불청객이기 때문이다. 논밭의 작물을 지키려는 농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눈에 들어오는 족족 뿌리째 뽑혀나가곤 하는 말썽꾼이다. 하지만 이렇게 홀대받는 민들레도, 아이들에겐 솜사탕 모양의 후후 불어 날리기 좋은 장난감이 되고, 약초를 활용하려는 이들에게는 두루 쓸모 많은 고마운 존재가 된다. 어떤 식물이 잡초인지 아닌지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이처럼 완전히 달라진다. 주어진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서 똑같은 식물이 잡초로 여겨지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다는 게 참 공교롭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잡초’란 무엇일까. ‘섞일 잡’에 ‘풀 초’로 이뤄진 ‘잡초’라는 단어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풀’이라고 국어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다. 일부러 심고 애써 돌봐야 자라는 작물에 비해, 스스로 번식하는 잡초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생명력은 잡초만의 놀라운 능력이자 생존수단이다. 땅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려서 적극적으로 영양분을 흡수하는 잡초에는, 재배된 작물에서 섭취하기 어려운 미네랄과 영양소가 풍부하다. 아무 생명체도 살지 않는 황폐한 땅에 기어이 찾아들어 뿌리를 뻗고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토질을 차차 회복시키는 역할도 한다. 잡초에 관한 어느 책의 제목처럼, ‘대지의 수호자’라는 이름이 꼭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살짝 벗어나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면, 잡초는 생태계 안에서 자기 몫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살아가는 하나의 구성원이다. 잡초를 마냥 미워하며 몰아내기보다, 마음을 열고, 더 자세히 알아보고, 쓸모에 맞게 활용한다면 어떨까. 훨씬 더 이롭고 즐거운 공존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길가, 들판, 산속, 심지어 아주 작은 틈새까지,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샛노랑 환한 얼굴의 민들레는 모든 부분이 다 약으로 쓰인다. 잎과 꽃, 뿌리에서부터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즙까지 어디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 약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해독작용이 뛰어나서 간에 이롭고, 혈당 조절 및 이뇨 작용을 돕는다. 열을 내려주고 염증과 붓기를 다스리는 효과가 있으며 소화기능을 원활하게 한다. 비타민과 미네랄, 항산화물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면역력을 높여주며, 줄기의 단면에서 나오는 하얀 즙은 벌레에 물렸을 때 가려움을 진정시키기 위해, 또는 사마귀를 없애기 위해 꾸준히 바르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렇듯 사람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 아닌 다른 존재들에게도 민들레는 두루 이로운 영향을 끼친다. 민들레 씨앗은 작은 새들의 먹이가 되고, 또한 이른 봄부터 개화하기 때문에 배고픈 꿀벌들에겐 어려운 시기의 소중한 영양 공급원이 된다. 꿀벌들을 유인하므로, 벌의 수분이 꼭 필요한 과일이나 채소는 민들레를 가까이 자라게 두면 더 활발한 수분이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 더해 땅속 깊이 뻗어나가는 민들레의 뿌리가 미네랄과 질소 등 풍성한 영양분을 위쪽으로 퍼뜨려서, 주변 작물들이 더 건강하게 자라게 된다.

 

순우리말인 ‘민들레’라는 이름은 ‘문’의 ‘둘레’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추정된다. 영어 이름 ‘dandelion’은 사자lion의 이빨dent이라는 의미인데, 삐죽빼죽한 잎의 톱니 모양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그리스, 로마에 걸쳐 두루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중세 수도원의 정원에서는 약용 및 요리용으로 재배되었다. 중국의 전통의학에도 ‘포공영’ 혹은 ‘포공초’라는 이름으로 여러 의학서에 등재되었다. 최근 들어 민들레의 약효가 널리 알려지면서 즙, 환, 추출물 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들이 유통되고 있으나, 검증된 절차를 거쳐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구입 전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민들레를 직접 채취하려면, 중금속 매연 등 오염 물질이 없는 청정 지역인지부터 먼저 확인해야 한다. 여린 잎은 생잎 그대로 먹어도 되지만, 특유의 쓴맛을 제거하고 싶다면 찌거나 데친 후 양념을 버무려 먹으면 좋다. 잎과 꽃은 잘 건조시켜 약재로 쓸 수 있고, 말린 뿌리를 덖은 후 잘게 썰거나 분쇄해서 ‘민들레 커피’로 마실 수 있다. 열을 가하면 신맛과 고소한 맛을 내는 이눌린 성분이 뿌리에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인데, 서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커피 대용품으로 활용되었고, 카페인 섭취를 줄이려는 이들에게 큰 관심을 얻고 있다. 한편 민들레 꽃과 잎, 뿌리를 소주나 보드카 등 도수 높은 알코올에 담가 장기 숙성시키면 '민들레술'이 된다. 이러한 담금술을 서양 허브의학에서는 ‘팅쳐tincture’ 라고 부르는데, 알코올에 약성을 잘 우려낼 수 있고, 장기 보관이 가능하며, 손쉽게 활용할 수 있어 가정의 상비약으로 줄곧 쓰였다.

 

단, 과잉 섭취 혹은 장기 복용할 경우 소화장애, 복통 등 신체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체질에 따라 간혹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으므로, 약으로 이용하려는 경우 사용 전 반드시 소량으로 테스트를 거치는 게 좋다. 그러나 민들레 자체에는 독성이 전혀 없으므로, 단기간 섭취할 경우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참고로 ‘민들레’는 민들레속 식물 전체를 포함한 명칭이고 우리나라에는 약 10여 종이 자생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살아온 토종민들레는 따뜻한 남부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고, 1900년대 초 유입되어 온 귀화식물 서양민들레가 지금은 훨씬 더 흔하다. 토종민들레는 4~5월 한 번만 꽃이 피지만, 서양민들레는 봄부터 초가을까지 여러 번 꽃을 피우며 더 널리 퍼져나가고, 도시 환경에 잘 적응하는 등 번식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토종민들레는 꽃 아래 총포가 꽃을 감싸는 형태, 서양민들레는 총포가 벌어져 있는 형태여서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모습이나 빛깔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특성이나 약효는 비슷한 편이다.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잡초란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아직 그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놀랄 만큼 커다란 가치를 품고 있는 민들레에게 올 봄,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보면 어떨까.

 

* 잡초와 더욱 친하게 지내고 싶을 때, 참고하면 좋을 책

- 잡초 치유 밥상 / 권포근 고진하 지음

- 고맙다 잡초야 / 황대권

- 전략가, 잡초 / 이나가키 히데히로

- 정원 잡초와 사귀는 법 / 히키치 가든 서비스

- 미움 받는 식물들 / 존 카디너

 

글 강수희(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instagram.com/bear.tiger.herb)’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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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이야기2023. 5. 2. 18:08

월간 일류도시대전 3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약초들의 어머니, 쑥

동서양의 전통의학에서 오래도록 활용되어 온 고마운 허브

 

 

단군신화 속 곰과 호랑이가 동굴 안에서 먹던 풀, 누구나 알고 있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고, 일상 속에서 수시로 접하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허브는 아마도 쑥일 것이다. 제철인 봄에 주로 즐겨먹지만, 쑥떡이나 쑥차처럼 쑥이 들어간 음식은 사시사철 쉽게 접할 수 있다.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사우나에서도, 뜸으로도, 향으로도, 모깃불로도.. 폭넓은 분야에 걸쳐 쑥은 요모조모 알차게 활용된다. 어떻게 보면 너무 자주 흔하게 만날 수 있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커다란 가치를 우리가 잘 눈여겨보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데서나 쑥쑥 잘 자라서 ‘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쑥의 학명은 ‘아르테미시아’, 그리스 신화 속 다산과 풍요의 신인 아르테미스로부터 비롯된 이름이다. 동서양을 아울러 전통의학의 긴긴 역사에서 쑥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고대 로마제국의 의사였던 갈레노스가 생리불순에 쑥을 처방했다는 기록이 있고, 로마의 군인들은 행군에 앞서 발병을 막으려고 샌들 안에 쑥을 넣었다고 한다. 중세 유럽 약초학자들에게는 ‘약초들의 어머니’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며 피부병 및 염증 치료에 쓰였고, 홉을 대신하여 맥주 제조에도 활용되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오래된 병과 하혈을 낫게 하며, 복통을 멎게 한다”고 언급되었으며, 중국의 이시진이 쓴 의학서 ‘본초강목’에도 '속을 덥게 하고 냉을 쫓으며 습을 없앤다'는 기록과 함께 상세한 처방이 안내되었다. 한편, 4세기 경 출간된 의학서 '주후비급방'의 개똥쑥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한 중국의 투유유 교수는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현대의학에 비하면 구식이고, 미신에 가까우며,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괄시받았던 전통의학이 투유유 교수의 수상 이후로 다시금 폭넓게 재조명받고 있다.

 

국화과 쑥속(Artemisia)에는 약 470여 종에 이르는 식물이 속해 있고, 우리나라에는 쑥, 사철쑥(인진쑥), 황해쑥, 개똥쑥 등 저마다 다른 특성을 지닌 쑥이 약 20여 종 이상 자생하고 있다. 봄철에 뜯어먹는 부드러운 어린 쑥을 ‘애쑥’이라고 부르고, 말려서 약재로 활용하는 쑥을 ‘약쑥’이라고 부른다. 쑥국이나 쑥떡처럼 음식으로 먹을 때는 단기간 적은 양을 섭취하므로 쑥의 종류에 대해 반드시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약으로 쓸 경우에는 꼭 원하는 목적에 알맞은 종류인지를 확인하고, 적절한 용법과 용량을 전문가와 상의한 후 복용해야 한다.

 

따뜻한 성질을 지닌 쑥은 피가 잘 순환하도록 돕고, 단백질, 칼슘, 비타민A·B2·C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면역력을 높여준다. 또한 섬유질이 장의 연동운동을 원활하게 해서 변비 해소를 돕고, 활성 산소를 억제하는 타닌 성분이 세포의 노화를 방지한다. 상쾌함이 느껴지는 독특한 향기는 시네올(cineole)이라는 성분에서 비롯되며, 유파틸린, 자세오시딘 등의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항염증, 항균작용을 돕는다. 특히 여성에게 이로운데, 생리불순을 낫게 하고 생리통을 완화시킨다. 소염 및 지혈작용을 해서 피부건조증이나 알레르기성 염증에도 도움을 준다. 야외 활동 중 벌레에 물렸을 때, 생잎 그대로 짓이겨서 가려운 부위에 바르면 통증과 가려움을 낮춰준다.

 

쑥을 캘 때, 혹은 구입할 때에는 반드시 매연이나 중금속에 오염되지 않은 땅에서 자란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요리 재료로 쓰려면, 쑥을 엷은 소금물에 잠시 담가놓았다가 여러 번 헹구어서 요리하면 푸른빛을 잘 살리면서 쓴맛을 없앨 수 있다. 싱싱할 때 최대한 빨리 섭취하는 게 좋지만 보관이 필요한 경우엔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보관하거나, 또는 한 번 먹을 분량씩 소분하여 냉동실에 보관할 수 있다. 습기가 남지 않도록 완전히 잘 말려 보관하면 두고두고 쑥차로 마실 수 있다.

 

쑥국, 쑥떡, 쑥버무리, 쑥라떼.. 많고 많은 쑥요리 중에서 무척 쉽고 간단해서 내가 가장 즐겨 만드는, 그리고 외국인 친구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았던 메뉴는 ‘쑥 부침개’, 영어로는 ‘mugwort pancake’이다. 어린 쑥 한 움큼을 가위로 대충 썰고, 묽은 밀가루 반죽에 섞은 다음, 넉넉히 기름을 두른 팬에서 중불로 노릇노릇 잘 부치면 10분도 걸리지 않아 근사한 한 접시가 뚝딱 완성된다. 쑥의 그윽한 향기를 고스란히 품은 채로 바삭바삭 고소하게 잘 부쳐진 ‘쑥 팬케이크’는 미국인 남편도, 일본인 이웃도, 대만인 친구도, 맛을 본 모두가 엄지를 척 치켜세우며 ‘정말 맛있다!’고 감탄하곤 했다. 재료비는 거의 공짜인 셈인데, 자연이 건넨 이 ‘쑥’이라는 선물 덕분에 특별한 맛을 모두에게 선사할 수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뿌듯해했고 고마워했다.

 

‘서양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을 약처럼, 약을 음식처럼 쓰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한의학에서도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음식은 한 뿌리라는 점을 줄곧 강조하고 있다. 동서양에 걸쳐 두루 이어져 온 이 놀라운 지혜를 즐겁게, 손쉽게, 그리고 맛있게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음식, 아니 약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올봄엔 쑥을 더 자주 접하며, 쑥과 더 친하게 지내보자. 쑥의 향기를 마음껏 음미하고 즐기는 동안, 건강이 절로 우리에게 찾아들지도 모른다.

 

 

 

글 강수희(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instagram.com/bear.tiger.herb)’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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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솔밧
허브이야기2023. 5. 2. 17:45

월간 일류도시대전 2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2023년은 토끼의 해, '재미있고 향기로운 허브 이야기'의 첫 번째 순서로 토끼풀을 소개한다. 어린 시절 풀밭에서 꽃반지를 만들어본 기억이 있다면, 혹은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찾으려 애써본 적이 있다면, 하얀 꽃송이와 동글동글한 잎사귀를 지닌 토끼풀을 금세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토끼가 잘 먹어서 토끼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사실 토끼풀을 제일 즐겨먹는 건 닭이나 염소 같은 가축들이다. 온갖 영양분이 풍부한 토끼풀이 훌륭한 식사가 되기 때문이다. 꿀벌들에게는 향긋한 꽃송이가 인기가 높고, 다른 콩과식물들처럼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서 공기 중의 질소를 땅으로 옮기는 녹비작물로도 이용된다. 강한 생명력으로 어디서든 잘 자라고 널리 번져나가는데, 친환경 농장에서는 농약이나 비료를 쓰는 대신 토끼풀을 마음껏 자라도록 두어서 토질 향상, 잡초 억제 등의 효과를 얻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토끼풀은 사람에게도 이롭다. 피를 맑게 하고, 혈액순환을 돕고, 염증을 가라앉히며, 여성호르몬의 작용을 돕는 식물성 이소플라본이 함유되어 중장년 여성의 갱년기 증상을 완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또한 비타민과 미네랄, 항산화물질이 풍부해서 면역력을 높이고 해독작용을 돕는다. 부드럽고 순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어서 섭취하기에도 좋다. 어린잎은 샐러드에 넣어 먹을 수 있고, 꽃과 잎을 잘 말리면 바닐라처럼 은은한 향기가 나서 차로 우려 마시기에 좋다. 다른 허브들과도 잘 어우러지며 개성 강한 다른 향을 잘 둥글려주는 역할을 해서, 허브차 블렌딩의 재료로도 널리 쓰인다.

 

대전으로 이사를 오기 전 몇 년 동안 거주했던 일본 오사카에는 크고 작은 동네 공원들이 많았는데, 토끼풀이 많이 나는 봄과 여름이면 공원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부지런히 채집을 하곤 했다. 인적 드문 이른 아침에, 가위와 바구니를 챙겨 풀밭에 웅크린 채로 열중하고 있으면, 이따금 호기심 많은 어르신들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토끼풀을 모아요.” “그걸 어디다 쓰게요?” “말려서 허브차로 만들어요. 여러 약효가 있대요.” “와... 토끼풀이 먹을 수 있는 풀인지 몰랐네요.” “저도 그랬어요. 꽃향기가 정말 좋아요. 맡아보세요.” 이렇게 다정한 대화가 오갔고, 꽃송이를 받아든 어르신들은 따스한 웃음을 지어보이셨다. 그런 소소한 추억들이 담겨 있어서, 내게는 토끼풀이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나 역시 허브에 관심을 갖고,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하기 전에는 우리 주변 가까운 곳에 ‘허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이렇게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허브에 대해 더 깊이, 더 넓게 알아갈수록 허브의 세계는 정말이지 풍성하고 흥미롭고 또 유익하다는 걸 깨우치며 거듭 감탄하게 된다. 봄이 오면, 산과 들과 물가에 토끼풀이 환하게 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향기로, 약효로,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친구 토끼풀을 직접 찾아보면서 잘 활용해본다면 어떨까.

 

 

** 토끼풀을 만날 수 있는 곳 & 만나는 방법

- 흰 토끼풀과 붉은 토끼풀이 있는데, 색깔과 모양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특징은 비슷하다.

- 천변, 들판, 산자락 등 도시 곳곳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대전광역시 하천관리사업소에 문의한 결과, 대전 시내 하천들의 경우 제초제 등의 농약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많이 자라났을 때 기계로 자르는 방식으로 관리한다고 한다.

-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깨끗한 곳에서 채집한 후, 연하게 식초를 탄 물에 담갔다가 여러 번 잘 헹군다. 채반에 올려 습기가 전혀 남지 않도록 잘 말린 후 차로 활용할 수 있다.

- 채취가 어려운 경우, 한약방이나 해외 허브 관련 쇼핑몰을 통해 건조된 상태의 토끼풀을 구입할 수 있다.

 

 

글 강수희(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instagram.com/bear.tiger.herb)’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월간 일류도시대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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