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편지2022. 11. 5. 19:45
곰과 호랑이 허브 _  가을날의 허브편지

 

: 허브를 다루면서 떠올린 생각들, 널리 나누고픈 이야기들을 친구에게 편지쓰듯 적어봅니다 ;-)
 
* 지난 허브편지들
 
1호 _ 늦여름의 허브편지 https://blog.naver.com/vertciel/222467529305
2호 _ 초가을의 허브편지 https://blog.naver.com/vertciel/222507869910
3호 _ 한겨울의 허브편지 https://blog.naver.com/vertciel/222625100427
4호 _ 이른봄의 허브편지 https://blog.naver.com/vertciel/222625100427
  

 

 
 
 
 
 
 
 
 



 

1. 오랜만에 '허브편지'를 적습니다. 그새 여러 번 계절이 바뀌었네요. 이른 봄 저희는 오사카에 가서, 'The Branch' 공간을 천천히 정리한 다음, 여름의 시작 즈음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곧바로 8월 초부터 시작하는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 전시를 준비했고, 일본에서 부쳐온 짐들을 정리하며 줄곧 바쁘게 지내왔습니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손수 가꾸고 돌보며 마음을 더했던 정든 집과 '주머니 텃밭'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불쑥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허전합니다만.. 그러니 더더욱 지금 머무는 이곳, 이 자리에 더 충실해져야겠다는,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더욱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이번 허브편지의 첫 페이지에서는, 제 오랜 즐거운 습관, '들꽃 모둠'을 소개할게요.

주변에서 꽃과 풀들을 모아 다듬어 작은 병에 담고, 식탁에 올려두거나 곳곳에 선물하는 이 '들꽃 모둠'의 첫 시작이 언제였나 싶어, 오랫동안 소소한 기록들을 잘 모아둔 제 블로그에서 '꽃병' 단어를 검색해보았습니다. 저도 한참 잊고 있었던 이 습관의 계기가 되었던 작은 사건은 약 10년 전, 2013년 초였네요. '꽃다발 재활용'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던 꽃다발이 안타까워서, 작은 유리병을 모아다 꽃병을 만들어 널리 나누었고, 곱고 향긋한 그 존재가 참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 경험은 '봄 사세요 꽃노점상'으로 이어져서, 길에서 소박한 꽃다발을 판매하기도 했고요, 오사카에서 텃밭을 가꾸면서도 일부러 꽃을 키워 이웃들과 나누었고.. 일본의 작은 섬 메기지마에 머물던 때에도, 바다 쓰레기였던 작은 병들을 잘 씻어다 꽃을 꽂아 두루 띄워보내며 뿌듯해하기도 했습니다. 허브를 주로 다루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꽃을 참 좋아하며 늘 가까이 두고 있네요.

 

'들꽃 모둠'을 만드는 법은 무척 간단하고, 정답 없이 그저 마음껏 자유롭게 만들면 되지만, 처음 시도해보는 분들을 위해 제 소소한 팁들을 모아봅니다. 일단 꽃병으로는, 입구가 좁은 유리병을 준비하면 좋습니다. (저는 박카스, 비타500 같은 작은 병을 선호합니다.) 컵도 가능하지만 입구의 면적이 넓으면 줄기를 고정시키기가 어려워요. 다음으로, 재료들을 모아볼까요. 직접 가꾸는 텃밭이나 화분이 있다면 가장 좋지만, 없다면 산책을 나서보세요. 작은 풀, 들꽃.. 도시 안에서도 식물이 곳곳에 참 많이 살고 있답니다. 저는 학교 앞 화단, 관공서 앞 큰 화분에서 한 송이씩만, 마음속으로 '고맙습니다~' 인사를 건네며 살짜쿵 데려오기도 해요. 거둬온 재료들은 시들지 않도록 오자마자 바로 물에 꽂아두고요, 준비한 병이나 컵에 물을 채워넣은 다음, 줄기 아래쪽 잎들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줄기만 남기고 싹 다듬어줍니다. (물에 잠긴 잎은 금방 썩어서 꽃들도 금방 시들해져요) 

 

이제 플로리스트가 되어서 솜씨를 발휘할 차례, 재료들이 서로 잘 어울리도록 조심스레 병에 꽂아봅니다. 조금씩 높낮이를 조절해보기도 하고, 위치를 바꿔보기도 하면서, 마음에 들도록 '들꽃 모둠'을 꾸며보세요. 식물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3일 정도는 괜찮은 듯 해요. 매일 물을 갈아주면 가장 좋고요, 가을 국화처럼 튼튼한 꽃들은, 다른 풀과 꽃들이 시들어버리고 난 후에도 생생해서, 쭉 잘 돌보면서 같은 꽃으로 여러 번 '들꽃 모둠'을 만들어볼 수도 있답니다. 맨 아래 사진, 지난 주 데려온 보랏빛 국화가 1주일째 환히 피어있네요. 제게 그랬듯이, 이 작고 소박한 '들꽃 모둠'이, 일상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온기를 전달하는 소중한 통로가 되어준다면 참 좋겠습니다.

 

 

 

제가 늘 꽃을 얻어오는, 저희 동네 자전거길 입구입니다 ;-)

 

 

 

2. 올해는 봄부터 여름까지 멀리 떠나 있는 바람에 베란다 텃밭을 잘 가꾸지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볕이 잘 들어 식물들이 쑥쑥 자라는 베란다에서 여러 식물 친구들과 함께 알찬 여름과 가을을 보냈습니다. 작년부터 보문산 자락에서 거둬와서 쭉 키우고 있는 '파란나팔꽃'은 제가 특히 좋아하는 친구인데요. 늦여름부터 가을 내내, 매일 나팔꽃 갯수를 세어보며 시작하는 아침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나날이 꽃이 피었다가 지고, 새로운 줄기가 쭉쭉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신기했고요. 이제는 다 시들고, 꽃 진 자리에 씨앗이 맺혀 있네요. 틈날 때마다 조금씩 거두고 있는 나팔꽃 씨앗을 널리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누렸던 '아침의 나팔꽃을 만나는 큰 기쁨'을 다른 분들도 함께 누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팔꽃 씨앗을 나눕니다. 신청해놓으시면, 언젠가 문득, 아마도 초겨울 즈음에 불쑥, 우편함으로 찾아갈 거에요 ;-) 신청 페이지는 이쪽입니다. 

 

https://forms.gle/oHUpYPF2BDYyg7zA7

 

* 나팔꽃이 감고 올라갈 수 있는 지지대나 네트, 끈이 설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무래도 좁은 실내 공간이라면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이렇듯 씨앗을 거두고, 나누고, 또 다시 심는 일은 늘 놀랍습니다. 그 과정을 곰곰이 들여다볼수록 마음이 절로 숙연해지고, 온 우주에 걸쳐 있는 끝없는 생명의 순환을 떠올리게 합니다. 9월 말의 추분을 지나, 이제는 점점 더 낮의 길이가 짧아지고, 밤에는 추울 정도로 온도가 낮아지고 있어요. 다가오는 다음 24절기는 무엇일지 확인해보니, 내일모레 토요일이 '한로', 찬 이슬이 맺히는 때라고 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다가오는 겨울을 잘 지내고 또 잘 맞이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편지를 받아보시는 분들 모두, 더 아름답고 더 충만한 가을날을 맞이하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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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솔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