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이야기2023. 11. 16. 17:20

 

월간 일류도시대전 10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허브는 인류 문명의 역사와 함께 꾸준히 활용되어 왔다. 영어로 ‘약’을 뜻하는 ‘드럭(Drug)’은 ‘말리다’를 뜻하는 네덜란드의 고어 ‘Droge’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식물을 말려 약으로 썼던 전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식물에 관한 경험과 지식이 쌓여가면서 전통의학으로 발전했고, 이는 오늘날의 현대의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양의 허벌리즘, 동양의 한방의학, 인도의 아유르베다, 아메리카 대륙의 약초학까지.. 각각의 갈래마다 관점이나 특징은 조금씩 다르지만, 식물을 관찰하며 발견해낸 특징을 필요한 상황에 적용시켜 이로운 효과를 얻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다.   

이달의 주인공, 당귀는 동서양의 전통의학 양쪽에 두루 걸쳐 무척 활발하게 쓰였다. 옛날 중국에서는 아내가 전쟁에 나가는 남편에게 챙겨 보내면서, 당귀를 먹고 기운을 내어 반드시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했다는 전설에서 ‘마땅히 돌아오다‘는 뜻의 당귀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한편 영어 이름인 ‘안젤리카(Angelica)’는 라틴어로 ‘천사’라는 뜻으로, 중세 시기 역병이 돌던 때 한 수도사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 이 식물의 효험을 알려주었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이후 중세 유럽에서는 ‘성령의 뿌리 (Root of the Holy Ghost)’ 라고도 불리었는데, 무엇이든 치료할 수 있는 치유 효과와 더불어, 악령의 저주를 물리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인들의 바람처럼 무엇이든 다 치료할 수는 없지만, 당귀는 여러 분야에 걸쳐 폭넓게 이로운 작용을 해서 약으로 널리 쓰였고, 특히 여성에게 이로운 작용을 해서 ‘여성용 인삼’이라는 별칭까지 있다. 기본적으로 당귀는 혈액을 생성시키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데, 특히 혈액이 많이 모이는 자궁, 간, 심장 질환을 개선하는 데 쓰인다. 염증을 완화시키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 감기에 걸렸을 때에도 좋다. 또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활성화시켜 갱년기 여성에게 도움이 되며, 치매를 유발하는 성분을 억제하고 체내 활성산소를 제거하므로 노인 건강에도 이롭다. 면역력을 높여주고 피로회복을 도우며, 식욕부진이나 소화불량, 속쓰림, 구토 등 위장질환에도 효과적이다. 동의보감에 실려 있는 당귀를 사용한 처방은 500가지가 넘으며, 이는 감초, 생강과 함께 가장 많이 쓰인 약재들 중 하나이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쌍화탕’, ‘십전대보탕’에도 당귀가 들어가는데, 특유의 은은하고 그윽한 ‘한약 냄새’를 내는 주인공이 바로 당귀이다. 

세계적으로 당귀속 안에는 약 100여 종이 있는데, 이중 우리나라에서는 참당귀 (Angelica gigas), 일당귀 (Angelica acutiloba), 중국당귀 (Angelica sinensis) 가 재배되고 있다. 모두 미나리과 당귀속 식물이지만 종(種)과 외형이 다르고, 주요 성분도 조금씩 다르다. 참당귀는 붉은 꽃이 피며 잎의 맛이 달고 매운 편이고, 일당귀는 하얀 꽃이 피며 참당귀에 비해 잎의 초록빛이 더 짙고 윤기가 나며 특유의 향은 더 강하지만 매운 맛이 적고 재배가 더 쉬운 편이어서 쌈채소로 널리 쓰인다. 약효성분은 참당귀에 더 많아 약재로는 주로 참당귀의 뿌리가 많이 쓰인다.  

서양에서는 당귀의 개성 있는 향기를 향수, 술, 과자를 만드는 데 활용해왔다. 특히 당귀의 줄기를 데친 후 겉껍질을 벗겨내고 설탕에 절인 당절임(Candied angelica)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케이크와 과자의 장식으로 인기리에 활용되어 왔다. 국내에서는 쌈채소용 당귀 생잎만 유통될 뿐 싱싱한 꽃이나 줄기는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약재로 쓰이는 마른 당귀 뿌리는 한약 전문점이나 온라인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단독으로 마셔도 좋지만 생강, 대추, 천궁 등 잘 어울리는 다른 약재와 함께 차로 끓여 마시면 맛도 효능도 더욱 좋아진다. 대전역 앞 약재거리에는 오랜 역사를 품은 한약재 판매점들이 여러 군데 자리 잡고 있는데, 필요한 약재와 쓰려는 목적을 언급하면 성심껏 조언해주므로, 당귀를 직접 활용해보고 싶다면 약재거리 방문을 권장한다. 

맨앞에서 소개한 당귀의 특성이 그러하듯, 서양의 허브의학 그리고 동양의 전통의학 양쪽 모두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허브의 활용법 한 가지를 소개한다. 영어로는 ‘팅쳐(tincture)’, 쉽게 풀어쓴 우리말로는 ‘담금주’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알코올 용액에 장기간 허브를 담가 유효성분을 추출해내는 방식을 뜻한다. (알코올뿐만 아니라 식초나 글리세린에 우리는 것 역시 팅쳐에 속한다.) 팅쳐는 쉽게 변질되지 않아서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체내 흡수가 빠르며, 허브 그대로 섭취할 때보다 적은 양으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만드는 방법은 무척 간단하다. 도수 높은 소주나 보드카에 마른 허브를 넉넉히 넣고 2~3주 혹은 그 이상 우려내면 된다. 이 추출액은 액체로 된 약처럼 필요한 상황에서 소량씩 복용할 수 있고, 또는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을 만들 때 쓸 수 있다.  

필자의 아버지는 등산을 무척 좋아하셨다. 산에서 거둬온 솔잎으로 담금주를 만드시고 기분 좋게 드시던 그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레 허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닐까, 이 글을 적는 동안 새삼스레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자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품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부모님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이 ‘허브 이야기’ 칼럼 역시 누군가에게 자연에 대해, 허브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품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글 강수희 (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bear.tiger.herb)’와 ‘안녕코너샵(@hi_corner_shop)’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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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솔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