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잎, 라벤더, 엘더베리, 홀리바질, 카모마일, 민트, 로즈마리, 레몬그라스, 시데리티스, 히비스커스, 레몬밤,주니퍼베리, 시나몬, 카다멈, 로즈힙, 루이보스, 황기
: 따스하고 뭉근하고 다정하고 편안한 작은 공간, ‘미정작업실’에서 함께 보냈던 아름다운 기억들을 떠올리며, 고마움을 듬뿍 담아 블렌딩했습니다.
지난 달 한창 봄마중 꾸러미 작업을 막 시작하려던 때, 미정님으로부터 주문제작 블렌딩 제안을 받았습니다. 한정되어 있는 시간과 너무도 수북한 일감들.. 머리로만 생각했을 땐 다음 기회로 미루거나 사양해야 마땅했지만, 어째선지 제 마음은 '꼭 하고 싶다!' 로 기울었고 '네! 당연히 하고말고요!' 덥썩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미정작업실의 특별한 순간을 위한 블렌딩이었으니까, 사실 아무리 바쁜 일이 산더미에 산더미였더라도 맡는 게 당연했을 거예요.
'너무 흔한 허브티 같지는 않게. '앗, 이런 맛이라니' 특별하면서, 또 너무 튀거나 부담스럽진 않게.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이었으면..'
작년부터 쭉 ‘곰과 호랑이 허브’의 허브티를 만나오셨고, 특히 12월 초 틈싹에서 열렸던 허브티블렌딩 수업에도 함께하셨던 미정님이 블렌딩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주신 덕분에, 그 화살표를 따라 어렵지 않게 블렌딩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미정작업실에 갈 때마다 즐거웁게 맛보았던 IPA 맥주들의 느낌을 상상하면서, 꽃향기 폴폴~ 풍기는 허브들을 먼저 불러모았고요 (장미, 라벤더, 카모마일) 너무 꽃향기에만 치우치면 안되니까, 산뜻하고 시원한 느낌의 허브들을 추가했습니다. (홀리바질, 민트, 로즈마리, 레몬그라스) 악센트를 더해줄 향신료 친구들로 실론시나몬과 카다멈을 곱게 빻아 추가하고, 마지막으로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쳐준다는 주니퍼베리 그리고 따스한 기운을 북돋는다는 황기, 마지막 두 가지 재료에다가는 미정님 그리고 미정작업실을 향한 저의 바람과 기원을 함께 얹어서 넉넉히 더했습니다. 그 결과, 향기롭고 산뜻하고 이국적이면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꽉 찬 느낌의 제법 흡족한 블렌딩이 완성되었지요 :-)
이렇듯 허브티블렌딩 자체는 수월하게 이어진 반면, 차의 이름을 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름에 '기억'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미정님의 아이디어를 전달받고 '기억'이 들어가는 노랫말, 시 구절 같은 것들을 한참 열심히 찾았는데요.. 어째선지 마음에 쏙 들어오는, 알맞은 무언가가 잘 나타나지 않았지요. 여러 단어들과 메모들로 어지럽게 채워진 공책을 넘겨서, 새하얀 빈 페이지에 ‘미정작업실’, ‘기억’, 이라는 두 단어를 적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문득, 단순하고 담담하게 그저 '미정의 기억'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1) '미정작업실'에서의 기억, 2) 미정님과의 기억이기도 하면서, 3) 미정작업실 공간 설명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빌려 적자면, 아직 '미정'인, 정해지지 않은, 미래의 기억까지 의미합니다.
‘미래의 기억’ 이라고 적으며 제가 무척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님의 인터뷰를 떠올렸습니다. "우리가 미래를 기억한다면, 현재를 더 잘 살아낼 수 있다" 는 대목이 좋아서 잘 옮겨 적어두었는데요, 돌이켜보면 미정작업실에서 보냈던 저의 시간 - 천천히 맛좋은 맥주를 마시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홀로 가만히 책을 읽다가 끄적이고, 진심이 듬뿍 담겨 있는 뜻깊은 공연을 보기도 하면서 - 그 공간 안에서 알차게 보냈던 시간들이 모두 저에게는, ‘미래를 기억하는’, 때로는 휴식이기도 충전이기도 연결이기도 했던, 한없이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는 걸 기억합니다. 미정작업실과 미정님이 그 자리에 그렇게 있어주었기에 가능한 기억들이었지요. 이 모든 좋음과 아름다움과 그리움의 원인이자 배경이자 구성요소가 되어준 미정작업실에게, 아주아주 커다란 고마움을 품게 됩니다.
저뿐만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안식처이자 충전소이자 공연장이자 사랑방이자 그 무언가로써 꾸준히 사랑받아온, 제민천 옆 '미정작업실'의 아주 특별한 순간에, ‘곰과 호랑이 허브’의 허브티로 함께할 수 있어서, 소중한 ‘미정의 기억’을 허브로 표현하고 또 널리 나눌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아직 미정’이지만 분명히 ‘미정’다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 다음 '미정작업실'을 벌써부터 기대하면서 아니 '기억'하면서, 따스하고 향기로운‘미정의 기억’을 한 모금 머금어봅니다. 흐뭇한 웃음이 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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