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지금은 없는 차2019. 10. 27. 17:43

비 갠 후 숲

雨上がりの森

 

'비 갠 후 나뭇잎들은 더욱 알로록달로록 제 빛깔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이 글을 적기 전, 늘 하는 습관대로, 철자와 띄어쓰기를 확인하려고 국어사전에 '비 갠 후'를 쳐봤더니 나온 예문이에요. 이 이름을 떠올리면서 상상했던 풍경 그대로여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알로록달로록이란 표현도 참 곱지요.

 

이 블렌딩 차는 특별하게도, 전세계에서 온 재료들이 두루 사이좋게 어우러졌어요. 훌라댄스를 추는 친구가 선물해준 하와이 허브, 여행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출장길에 가져다준 페루 허브, 스페인 올리브농장에서 온 올리브 나뭇잎, 부산 친구가 손수 말려 선물한 귤피, 지난 여름 양산에서 직접 따온 딸기잎, 나가노현에서 얻어온 초피잎, 저희 동네에서 난 로즈마리와 캣닙과 펜넬과 툴시, 샌프란시스코 허브 회사에서 온 히비스커스와 레몬그라스. 이밖에도 여러 다양한 허브들을 모아 모아 모아 섞었어요. 보통은 단순한 블렌딩을 선호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축제처럼 왁자지껄 다양한 허브들을 한데 모아보는 것도 참 즐겁습니다. 상콤하면서도 살짝 매콤하면서 은은한 단맛이 맴도는 맛도 아주 마음에 들고요. 알로록 달로록 빛깔 고운 가을에 잘 어울릴 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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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솔밧
워크숍2018. 9. 20. 09:47


두번째 '나만의 허브차 만들기 워크샵'의 기록. 8년 전 서울에서 처음 만나서 두물머리 주말텃밭에 쭉 함께했던 제임스, 지금은 긴 여행 중에 이 동네 '에어 오사카 호스텔' 스탭으로 머물고 있다. 그리고 느릿느릿 일본을 여행하고 있다는 프랑스 친구 마고 역시 호스텔의 손님, 이 공간의 시작부터 진행까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영미,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였다. 첫 워크샵 때보다는 덜했지만 긴장도 부담도 없진 않았는데, 일단 다같이 밭에 가서 허브들을 만나 냄새맡고 만져보고, 허브차를 마시면서 쌓인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하는 동안 차차 마음이 느슨해져서, 나중에 신이 나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이어갔다.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더니 끝나고는 완전히 기진맥진했지만, 참 뿌듯한 시간이었다. 


한곳에 모여 앉아서 같은 재료를 써서 만들었는데도 각자의 차는 모두 딴판으로 다르다는 게, 늘 하는 경험이지만 참 흥미롭고 재밌다. 나도 처음 시도해보는 은행잎과 솔잎 위주에 로즈마리가 듬뿍 들어간 제임스의 차는 거친 자연의 맛이 났고, 일본에서 많이 쓰는 채소 '시소'가 마음에 든다며 시소를 듬뿍 넣은 마고의 차는 섬세하면서 풋풋한 풀향이었다. 제라늄과 로즈마리 향에 끌린 영미의 차는 꽃향기가 그윽한, 한방'약' 같은 느낌이었다. 차 이름은 뭐가 좋을까, 일단 맛부터 보고 정해보자며 티포트 세 개를 총출동시켜서 나란히 차를 우렸다. 시음회를 하듯 정성껏 우린 세 가지 새로운 허브차를 맛보고, 어떤 느낌인지 소감을 나누고 나서, 맨 마지막은 색연필로 직접 포장지를 꾸몄다.  


널찍한 테이블 가득 온갖 유리병들과 티포트와 찻잔과 숟가락과 색연필과 종이까지, 산만하고 어지러운 그 풍경이 어쩐지 참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각자 고심하며, 같이 수다떨며, 숟가락과 저울을 건네고 받으며 들뜬 친구들의 표정을 보면서도 왠지 아주 그립고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때는 뭔지 잘 몰랐던 단어가 후기를 적는 동안 떠올랐다. 어릴 적 늦저녁까지 놀이터에 모여 앉아 놀던 '소꿉장난', 딱 그 풍경과 닮아 있었다. 이것저것 섞고 만들고 맛보고 수다떠는 재미난 놀이, 워크샵을 열기 전 홀로 허브차를 만들 때도 '이건 정말 재미난 놀이같다'고 늘 느끼곤 했다. 향기롭고 유익한데다 즐겁기까지 한, 참 좋은 놀이. 그동안 내가 허브차를 만들어오면서 생생하게 느꼈던, 그래서 다른 분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었던 이 즐거움과 보람, 경이로움 같은 느낌들이 친구들에게 잘 전해졌다면 좋겠다. 앞으로도 더더더 많은 분들께 잘 전해진다면 더욱 좋겠다 :-)





Posted by 솔밧
곰과 호랑이 허브2018. 9. 15. 16:23




"Herbs are remarkable plants that touch every aspect of our lives : they reach us through our senses, they connect us with our ancestors and the world around us, and they enhance our physical, mental and spiritual well-being." 

_ Lesley Bremness, <The Essential Herbs Handbook>



"역사적으로 인간은 1만에서 8만 가지의 식물을 음식으로 섭취해왔다. 이중에는 물론 재배한 것도 있었지만 대개는 야생에서 수확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거주지의 식물 분포에 따라, 인체의 필요에 따라 각기 다른 식물을 섭취했다. 덕분에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병들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다양한 식물 화합물질들이 질병을 억제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인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채소 종류는 열 가지도 안 된다. (...) 본질적으로 식물은 생태적인 약이다. 대규모의 공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오염원을 쏟아내지도 않는다. 부작용도 적으며 재생도 가능하다. 그 효능에 대한 지식도 소수 전문가들의 손에만 맡겨져 있지 않으며, 식물을 약으로 사용하는 문화권 전역에 고루 퍼져 있다."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 <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중에서



허브를 다루면 다룰수록, 점점 더 알아갈수록, 자연이 우리에게 무한정 베풀어주는 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놀라운 선물에 끝없이 감탄하게 됩니다. 더 잘 알고 싶어지고, 더 널리널리 이 멋진 선물을 알리고 나누고 싶어집니다. 아직은 배움도 경험도 그저 얕지만, 그러니 더 부지런히 쌓아가야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다집니다. 


요리, 마사지, 아로마테라피.. 허브의 여러 쓰임새 중에서, 저는 허브를 기르고, 말리고, 잘 섞어서 차로 만드는 일을 합니다. 일상 속에서 가장 손쉽게 허브를 만나고 그 이로움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더 큰 까닭은 제가 무척 차를 좋아해서입니다. 막 자격을 받고 걸음을 시작한 햇병아리 허벌리스트로서, 허브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꾸준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쓰는 허브들은 대부분 이곳 오사카 기타카가야 곳곳에 있는 작은 텃밭들에서 손수 거두어 말린, 농약이나 비료는 전혀 쓰지 않은, 자연농에 가까운 허브들입니다. 이곳에서 자라지 않는 일부 허브들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가게인 샌프란시스코 허브 회사에서 구입했습니다. 허브에 대해, 허브차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편안하게 제게 연락해주세요 :-)

 





Posted by 솔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