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렌딩 허브티2021. 1. 12. 11:25

 

캘리포니아의 가족들,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이름 붙인 차 '따스하게 북돋는 손길'을 소개합니다. 제 시어머니 니니, 그리고 니니의 동생이신 패트릭 이모 사이안, 두 분은 제가 허브차 작업을 '일'로 시작하기 훨씬 전, 그저 단순한 재미 겸 취미일 때부터 힘껏 지지하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어머, 허브차가 이렇게 맛있다니', '정말로 숙면에 도움이 되더라. 금방 다 마셔버렸네. 혹시 더 만들어줄 수 있겠니', '가게에서 본 작은 주전자인데 네가 생각이 나서 사왔어!' 때로는 제가 마다하는데도 굳이 허브차 값을 손에 쥐어주시기도 해서, 덕분에 새로운 재료들을 선뜻 더 구입할 수도 있었고, 더 재미난 블렌딩에 도전해볼 수도 있었지요.

올 겨울 새로 만든 '면역력을 높여주고, 혈액 순환을 돕는 차'에 어떤 이름을 붙일까 한창 고민하던 중에, 마침 그날 생일을 맞으신 사이안 이모를 떠올리면서, 그동안 제가 받아온 이런 응원의 마음들을 잊지 않고, 잘 기억하고 되새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 고마움을 담아, '따스하게 북돋는* 손길'이라는 이름을 정했습니다. 이 차가 가닿을 그 누군가에게도, 차를 만들며 담은 저의 정성, 그리고 저를 도와주었던 수많은 따스한 마음들.. 그 모두가 전해져서 차 한 잔이 '따스한 손길'처럼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은 이름입니다. 

* 북돋우다 : 기운이나 정신 따위를 더욱 높여 주다.   
: 단어 뜻을 또렷하게 모르겠을 땐 늘 국어사전을 찾아봅니다. '북돋우다' 발음하다보면 두물머리에서 친구들과 감자밭에 북을 주던 기억도 떠오르고, 어쩐지 담뿍 힘이 솟는 것도 같고, 복스러운 복덩어리가 찾아들 것도 같습니다. 처음엔 그냥 '따스한 손길'이라고 이름지었다가, 아무래도 너무 단순하니까, 그리고 좋아하는 단어를 무언가 덧붙여보자, 해서 넣게 되었습니다 ;-) 이렇게, '곰과 호랑이 허브'에서 만드는 차의 이름이 그냥 이름, 평범한 단어에 그치지 않고, 고운 말, 아름다운 말, 의미 있는 말을 널리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래서 늘 한참을 고민해서, 정성을 그득 담아서 이름을 정합니다. 이 단계가 늘 제일 어렵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척 흥미진진하고 즐겁기도 합니다 ^__^

 

로즈힙, 라벤더, 네틀, 세이지, 홀리바질, 레몬그라스, 솔잎, 황기, 카모마일..

언젠가 어느 책에서 보았던 '감기 초기, 혹은 예방에 좋은 차' 블렌딩을 참고하면서

주로 면역력을 높여주고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이로운 허브들을 두루 조화롭게 모았습니다. 

 

 

 

차를 우리는 동안 담아본 사진. 김이 모락모락 자욱하게 -

 

 



 

마침 사진의 배경도 멀리 터키에서 보내온 선물,

고맙고 그리운 여러 따뜻한 손길들을 떠올리게 하는 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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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딩 허브티2020. 12. 13. 10:15

"그 사람의 천성에 알맞는 직업을 천직이라고 한다. 인간사회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 저마다 몫몫이 필요한 일이 주어져 있을 것 같다. 천직을 가진 사람은 꽃처럼 날마다 새롭게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을 통해 '인간'이 날로 성숙되어가고 그 일에 통달한 달인이 되어간다. 천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 애착과 긍지를 지니고 전심전력을 기울여 꾸준히 지속하게 되면 그 일이 바로 천직이 아니겠는가."

 

 

법정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천직'에 대해 생각했다. 졸업 후 첫 직업이었던 책 편집은 흥미도 보람도 컸지만, 타고난 내 산만함과 덜렁거림과는 영 맞지 않았고, 얼떨결에 시작한 다큐 제작 역시, 힘겹게 한 편을 완성하긴 했지만 이 일을 계속해서 이어갈 자신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쉼없이 이어진 다큐 상영회와 여러 프로젝트들이 끝나가던 2016년 연말 즈음에, 서른 중반이 되어 또다시 진로탐색과 나아갈 방향을 찾는 고민을 시작했다.

계속해서 관심을 두어온 농사와 자연 분야, 그리고 어릴 적부터 쭉 좋아해온 차, 둘을 합쳐 직접 허브를 키워 차로 만드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고맙게도 자연스레 다음 길이 척척 이어졌다. 작은 텃밭이 여럿 있어 쉽게 허브를 키우고 거둘 수 있는 오사카의 작은 동네에 살게 되었고, 잠깐 한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허브를 폭넓고도 실용적으로 다루는 교육과정을 듣게 되었다. 여러 허브들을 직접 키우거나, 곳곳에서 구해서, 블렌딩 허브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곰과 호랑이 허브' 라는 이름으로 허브를 직접 키우고 거둬서, 허브차를 비롯한 여러 쓸모 있는 것들을 만드는 일, 그리고 허브를 가르치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은 이 일을 '천직'이라고 부르기 영 부끄러운 게, 법정스님의 표현처럼 '애착과 긍지를 지니고 전심전력을 기울여 꾸준히' 하고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이다. 게으름 피울 때도 있고, 막막해할 때도 있고.. 하지만 다른 어느 일들보다도, 허브를 다룰 때 가장 기쁘고 즐거운 건 분명하다. 그러니까 더 마음을 내어서, 전력을 기울여서, 이 일을 진짜 '천직'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겨울식량을 모으는 다람쥐가 된 기분으로, 봄부터 내내 허브를 키우고 거두고 말려서 모아두었다. 봄에도 유난히 비가 잦더니 여름 장마도 길어서, 몇 주 내내 흐리거나 비가 오다가 드문드문 해가 등장하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거두고 말리는 대신, 모아둔 허브를 정리하면서 차로 만들고 있다. 여러 군데 흩어져 있던 허브들을 종류별로 모아놓고 보니 꽤 양이 많아서, 모기에게 뜯겨가며 거둬온 보람이 있구나, 뿌듯해하기도 하고, 작은 밭에서 이렇게 거둘 수 있다니, 신기해하기도 하고, 이 모두가 자연이 베풀어준 선물이로구나, 감동하기도 한다. 풀만 그득하면 보는 재미가 없으니까 일부러 꽃들도 골고루 모아놓았는데, 엊그제 새로 만든 차에는 그 꽃들을 총출동시켰다. 새파란 수레국화와 새빨간 장미, 연분홍과 진보라 천일홍에다 작년에 선물받은 노을빛 금잔화까지. 알록달록한 빛깔도 곱고, 신선한 허브들이 어우러져서 맛도 향기도 참 좋은 이번 차는 "맑은 기쁨이 솟는 샘"이라고 이름붙였다. 만들어온 과정이 쭉 그랬고, 이 차가 가닿을 곳에서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으로, 역시 법정스님의 글에서 빌려온 표현. (고맙습니다!)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아름답게 여길 줄 알며, 또한 감사하게 여길 줄 아는데서 맑은 기쁨이 솟는다."

 

 

 

_ 2020년 7월, 오사카에서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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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딩 허브티2020. 8. 27. 17:26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May All Beings Be Happy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May All Beings Be Happy

 

어성초가 주인공인 블렌딩 허브차입니다. 어성초의 일본어 이름은 '도쿠다미'인데, 독을 다스린다는 뜻이래요. 이름처럼 해독작용에 뛰어나고, 염증을 낫게 하면서, 중금속 같은 노폐물을 배출해서 피를 맑게 한다고도 합니다. 다만 이름에서처럼, 생선 비린내 같은 쿰쿰한 냄새가 나요. 재미있게도 영어 이름도 fish mint인데요, 잘 말리면 그 비린내가 줄어들지만 여전히 조금은 그 내음이 남아있어서, 약불로 살살 덖으니 비릿함은 날아가고 불에 그을린 듯한 구수함이 더해졌습니다. 개성 강한 불맛이 참 매력적이에요.

 

저희 밭의 안쪽 그늘에서 마구 뿌리를 뻗으며 씩씩하게 자란 어성초를 중심에 두고, 로즈마리, 쑥, 제라늄, 민트, 캣닙.. 동네 곳곳 텃밭에서 자라난, 틈틈이 모은 허브들을 잘 섞었습니다. 덖어진 어성초의 구수한 맛에 산뜻한 다른 허브들의 맛이 더해져서, 낯설지만 매력적인 조화를 선보입니다. 개성이 뚜렷한 어성초만 홀로 돋보이지 않도록, 다른 허브들을 적절히 더하며 알맞은 밸런스를 맞추어가는 과정이 오래 걸렸지만, 그 과정을 거칠수록 더 다채롭고 풍성한 맛이 만들어진다는 게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처음엔 어성초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detox'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보다 뜻깊으면서 오래 울림이 남는 이름을 붙이고 싶어서 다시 고민을 이어갔습니다. 세상의 모든 '독'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이 차와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으면 좋겠다, 곰곰 생각하던 중에, 제게 무척 좋은 영향을 많이 건네주었던 '위빳사나' 명상의 발원문,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이라는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여러 허브들을 돌보며 거두어 다듬고, 잘 말려 보관한 다음 잘 섞어서 블렌딩 허브차로 만들고, 그걸 손수 그림을 그리고 포장해서 상품으로 내놓기까지, 아주 많은 과정과 손길을 거칩니다. 모든 손길마다 전부는 어렵겠지만 틈틈이 이 차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이 짧은 구절에 담겨 있는 넓고 깊은 바람을 거듭 마음에 새기려 합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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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딩 허브티2020. 8. 23. 13:18

 

 

기타카가야

 

제라늄과 시소, 민트와 클로버, 펜넬과 천일홍. 전부 저희 동네에서 거둔 허브들로 만든 차입니다. 그래서 저희 동네 이름 '기타카가야'를 차 이름으로 붙였어요. 제각각 개성 다른 향이 조화롭게 어울려서, 뜨겁게 마셔도 좋고, 차갑게 마셔도 좋습니다. 이 차를 만든 날의 기록을 블로그에 자세히 적어둔 덕분에 그날 그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네요. 

https://blog.naver.com/vertciel/221323050244

 

클로버 수확, 그리고 워크샵

잠들기 전 다짐했다. ‘내일은 꼭 5시 반에 일어나서, 클로버를 모으러 공원에 가야지. 너무 더워지기 전에...

blog.naver.com

 

장미향을 닮은 제라늄 향기는 우아하고 그윽한 느낌입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시켜주지요. 시소는 일본에서 두루 쓰는 잎채소인데, 깻잎과 닮았어요. 시소도 허브차로 쓸 수 있나? 반신반의하며 시도해본 이 블렌딩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맛있어서 무척 기뻐했습니다. 제라늄과 시소는 모두 염증개선, 혈액순환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

 

 

 

2020.8 덧붙여 씀

 

: 원래 '기타카가야', 저희 동네 이름이었던 이 차의 이름을 '향기로운 꽃의 파도'로 바꾸었습니다. 그저 저희 동네 이름이라는 단순하고 개인적인 이유보다는, 이 차가 다가갈 곳에서 무언가 새롭고, 신선하고, 그러면서 아름답고 향기로운 느낌을 퍼뜨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새 이름을 붙이려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태준 시인의 수필집에서 만난, 파블로 네루다의 시 '알스트로메리아'의 한 구절, 

 

향기로운 꽃의 파도를 물결치며 바람의 배가 지나갈 때

 

의 앞부분을 빌려왔어요. 발음해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향긋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 같지요? 실제로 제가 이 차의 주인공 재료인 제라늄을 모으러 밭에 갔을 때, 그런 '향기로운 꽃의 파도'와 만난 적이 있어요.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올 때마다 제라늄 향기가 파도처럼 물결치며 다가왔더랍니다. 이렇게 말이에요 ;-)

 

https://youtu.be/1euiZOSXG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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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딩 허브티2020. 2. 27. 18:49

 

 

 

 

히말라야의 꽃 

Flowers of Himalaya

 

상쾌한 민트에 상큼한 신맛이 더해지면 더더욱 상콤! 산뜻! 입안이 그저 환-해집니다. 처음 그 놀라운 상콤함을 만난 건 2013년 봄, 몇 주 동안 머물렀던 인도 북부, 히말라야 자락의 다람살라에서였어요. 동네 작은 가게에서 구할 수 있는 차 종류가 얼마 없었는데, 독특하게도 민트와 로즈힙이 반씩 섞인 차를 발견하고서 궁금해하며 데려왔지요. 난방이 안되던 추운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돼지꼬리'라고 부르는 작은 히터로 끓인 물에 필터 없이 후후 불어가며 마셨던 그 로즈힙 민트티, 처음엔 신맛이 영 낯설었는데, 익숙해지니 민트의 화한 맛에 시큼한 달큼함이 어우러진 그 조합이 마음에 들어서 즐겨마시게 되었지요. 

 

새로 데려온 허브들 중에서, 신맛이 나는 베리 종류를 어떻게 섞어볼까 고민하다 그 로즈힙 민트티가 생각나서 비슷한 느낌으로 섞어보았습니다. 시원한 스피아민트와 홀리바질, 툴시를 바탕으로 하고, 각각 신장과 심장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는 주니퍼베리와 호손베리, 그리고 비타민c가 풍부한 히비스커스를 더했어요. 개성 강한 여러 맛들을 보드랍게 모아주는 역할로는 부드럽고 달콤한 엘더플라워와 라벤더를 섞었습니다. 그렇게 기억 속 느낌을 꼭 닮은, 마음에 쏙 드는 상콤하고 산뜻한 맛이 탄생했어요.

 

차를 만들 때 언제나 가장 고민되는 순간은 바로 '이름 정하기'입니다. 인도에서 온 허브들이 많고, 첫 아이디어도 다람살라에서 왔으니까 그쪽 지명이 들어가면 좋겠네, 하던 참에 아이디어가 퍼뜩 떠올랐어요. 봄에도 하얀 눈을 이고 있던 히말라야 아래, 정성껏 작은 화분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마음 고운 사람들이 사는 그 동네.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한 장면을 그리면서 '히말라야의 꽃'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그때의 기록과 사진을 함께 덧붙여요. 기회가 된다면 사진 속 환한 얼굴의 아가씨를 다시 찾아가서, 이 집을 떠올리며 만든 차를 선물로 건네고 싶네요. :-)

 

 

 맥그로드 간즈 아랫마을에 있는 부토스쿨 공연을 보고 서둘러 윗마을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3주간 지내온 맥그로드 간즈를 떠나는 날이라 마음이 좀 울퉁불퉁했다. 정말로 여행의 막바지로구나, 하는 아쉬움이 제일 컸고, 그간 흠뻑 정들어버린 이 동네를, 여기 이 사람들을 떠난다는 생각에 조금 울적하기도 했다. 머무는 동안 생겨났던 좋았던 일들, 이날따라 유난히 날씨는 화창해서 조금은 야속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새 흠뻑 정들어버린 이 동네, 이 사람들, 그동안의 추억들, 분명 너무나도 그리워질텐데 이를 어쩌나. 곰곰해져서 걷는 중에 갑자기,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그룹 이름도 노래 제목도 알 수 없지만 분명 여러 번 들어본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의 노래였다. 나지막이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부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니, 이 작디 작은 마을에서 한국 노래를 듣게 될 줄이야.
바삐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집을 자세히 봤다. 앙증맞은 화분 몇 개가 창문 아래 나란히 놓인, 빛바랜 노랑색 벽에는 세월의 흔적이 있고, 작은 창문 안에는 빨간색 커튼이 달려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 어여쁜 집에 사는, 작은 화분들을 정성껏 가꾸는, 흥얼흥얼 한국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굴까 궁금해졌다. 문 앞에서 서성이는 동안 몇몇 장면들을 찍었고, 맞은 편 탁 트인 마을 앞 풍경을 담았다. 셔터소리가 너무 컸던 걸까. 창문으로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아, (손가락으로 집안을 가리키며) 코리아 뮤직, (다시 나를 가리키며) 아임 프롬 코리아" 라고 설명하자 그 얼굴이 활짝 웃었다. 짤막한 대화를 나누다가 활짝 웃는 얼굴 사진도 한 장 담았다. 예쁜 집, 예쁜 미소. 다음 번 맥그로드 간즈에 가게 될 때는, 작은 꽃들과 한국 노래들을 좋아하는 이 어여쁜 친구네 집도 다시 찾아가야겠다. :-)_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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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후 숲

雨上がりの森

 

'비 갠 후 나뭇잎들은 더욱 알로록달로록 제 빛깔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이 글을 적기 전, 늘 하는 습관대로, 철자와 띄어쓰기를 확인하려고 국어사전에 '비 갠 후'를 쳐봤더니 나온 예문이에요. 이 이름을 떠올리면서 상상했던 풍경 그대로여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알로록달로록이란 표현도 참 곱지요.

 

이 블렌딩 차는 특별하게도, 전세계에서 온 재료들이 두루 사이좋게 어우러졌어요. 훌라댄스를 추는 친구가 선물해준 하와이 허브, 여행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출장길에 가져다준 페루 허브, 스페인 올리브농장에서 온 올리브 나뭇잎, 부산 친구가 손수 말려 선물한 귤피, 지난 여름 양산에서 직접 따온 딸기잎, 나가노현에서 얻어온 초피잎, 저희 동네에서 난 로즈마리와 캣닙과 펜넬과 툴시, 샌프란시스코 허브 회사에서 온 히비스커스와 레몬그라스. 이밖에도 여러 다양한 허브들을 모아 모아 모아 섞었어요. 보통은 단순한 블렌딩을 선호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축제처럼 왁자지껄 다양한 허브들을 한데 모아보는 것도 참 즐겁습니다. 상콤하면서도 살짝 매콤하면서 은은한 단맛이 맴도는 맛도 아주 마음에 들고요. 알로록 달로록 빛깔 고운 가을에 잘 어울릴 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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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숲

Moonlit Forest

* 카페인이 들어있는 녹차와 홍차를 기본으로 여러 허브들을 섞은 차에요. 카페인에 민감하신 분은 피해주세요.


이 차에 얽힌 사연은 조금 깁니다. 시어머니께서 미국에서 사다주신, 'Pear Spice'라는 이름의 블렌딩 녹차, 달콤한 향이 좋았지만 향수처럼 너무나도 그 향이 세서 편안하게 마실 수 없었어요. 다른 차와 섞어보면 어떨까, 하며 연한 녹차, 자스민차, 그리고 민트 같은 허브들을 더하며 향기를 조금 누그러뜨렸습니다. 지금은 적당히 달달하고 은은한 느낌이 되었어요 :)


이 차의 이름은,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꾸준히 소식을 접하며 늘 눈여겨보고 있는 작은 공간, 제주의 '달빛서림'을 떠올리며 지었어요. 노란 꽃이 꼭 달 같기도 했고요. 멋진 이름을 빌린 고마움에 더해서, 쭉 아름다운 활동을 펼치며 긍정의 기운을 널리 퍼뜨리고 계신 키미님께 응원의 마음을 보내고 싶어서, 달빛서림으로 이 차를 띄워보냈습니다. 혹 제주에 계시다면 '달빛서림'을 찾아가보세요. 키미님께서 이 '달빛숲'차를 내어주실지도 몰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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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딩 허브티2018. 9. 14. 13:40




춤추는 곰

Dancing Bear  


쑥이 주인공인 허브차 두번째, 어떤 이름이 좋을까 고민하던 때 행복하게 허브차를 마시는 곰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행복한 곰'이었다가, 좀 더 흥겨운 느낌을 주는 '춤추는 곰'으로 바꾸었어요. 알록달록한 메리골드 꽃잎을 더해 마치 색종이 날리는 축제처럼 즐거운 느낌을 줍니다. 


쑥과 로즈마리의 조합을 저는 참 좋아하지만, 허브가 낯선 분들께는 쑥과 로즈마리에 풍부한 '시네올' 성분이 '너무 약초맛'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순한 애플민트와 오트스트로에 향긋한 툴시를 더해 더 쉽게 마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쑥은 해독작용을 비롯, 피를 맑게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 소화를 돕습니다. 민트와 오트스트로 역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낮추는 작용을 합니다. 긴 하루의 끝을 차분히 정리하며 쉬고 싶을 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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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둣빛

Grass Green


레몬버베나의 청량한 향기가 제일 먼저 코끝을 즐겁게 합니다. 산뜻한 레몬향을 바탕으로, 여러 종류의 민트와 엘더플라워, 라벤더에 바닐라향이 살짝 더해진 루이보스를 섞었습니다. 레몬버베나와 민트, 엗러플라워와 라벤더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낮추고 긴장감을 풀어줍니다. 아침 점심 저녁 밤, 언제고 마셔도 좋은 차입니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고민하던 때, 마침 루시드폴의 노래 '연두'를 듣고 있었어요. 4월의 노랑빛 감도는 연둣빛부터 5월의 청신한 초록빛까지 여러 초록빛들이 고루 섞여 있으니까, 더군다나 연두색을 참 좋아하니까, '연두'라고 붙여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샘표(!!)에서 이미 이 이름을 쓰고 있더군요. 그래서 '연둣빛'이라고 이름붙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랬듯, 루시드폴의 노래 '연두'를 들으며 만나보시길 권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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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솔밧
블렌딩 허브티2018. 5. 21. 20:45

 

봄의 노래 

春の歌

 

춘분날 만든 기념으로, 그리고 좋아하는 노래 제목을 따라서, '봄의 노래'라 이름붙였습니다. 엘더를 비롯, 라벤더, 카모마일처럼 화사하고 따스한 꽃향기가 가운데에, 그리고 레몬그라스와 민트의 산뜻함이 함께 담겨있습니다. 중심이 되는 엘더는 항염 효과가 뛰어나 오래전부터 약용 허브로 널리 쓰여왔습니다. 감기 및 호흡기 질환 예방, 알러지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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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솔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