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이야기2023. 5. 2. 18:09

월간 일류도시대전 5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바다의 이슬, 로즈메리

기억력을 높여주는 서양 허브의학의 ‘만병통치약’

 

 

‘허브’ 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연둣빛 허브차, 향기로운 에센셜오일, 아로마테라피 마사지, 실내용 디퓨져, 기능성 화장품과 건강식품... 허브 사용의 여러 갈래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가까이에서 허브를 만날 수 있는 수단은 식물원이나 꽃집에서 판매하는 작은 허브 화분을 통해서일 것이다. 글쓴이 역시 어린 시절 동네 화원에서 작은 화분을 구입하면서 허브를 처음 접했다. 크기도 작고 영 수수해 보이는데, 살짝만 잎을 스쳐도 산뜻한 향기가 강렬하게 풍겨온다는 게 무척 신기하고 놀라웠다. 바질, 민트, 라벤더, 로즈메리..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허브들 중에서, 가정에서 재배하기에 어렵지 않은 편이고, 다년생이어서 오랫동안 두고 기를 수 있으며, 생활 속에서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로즈메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로즈메리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이슬(ros)+바다(marinus), 즉 ‘바다의 이슬'이라는 뜻으로, 바닷가에서 잘 자라는 데다, 연푸른 빛깔의 작은 꽃들이 활짝 핀 모습이 마치 이슬이 맺힌 모습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기원전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석판에 언급되었을 정도로 인간과 함께해 온 역사가 매우 깊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도 로즈메리 가지가 발견되었으며, 그리스의 식물학자 디오스코리데스가 쓴 의학서 ‘약물지(De Materia Medica)’에도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서기 800년 경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대제는 ‘영지 관리에 관한 법령집’을 발표하면서 로즈메리를 포함한 100여 종의 허브와 채소, 유실수를 심도록 권장하였는데 이는 유럽 전역에 허브가 더 널리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오랜 시간에 걸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로즈메리는 특별한 순간의 상징적 존재로도 활용되었다. 맹세, 서약, 충실함의 징표로써 결혼식에 쓰이며 신부의 화관을 장식했고, 장례식에서는 ‘망자에 대한 영원한 기억’의 의미로 관 위에 놓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에도 등장한다.

 

이처럼 이야기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로즈메리에는 기억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몸 전체의 순환 작용을 활발하게 하며, 특히 뇌에 혈액과 영양, 산소를 공급하여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신경세포의 사멸을 줄여 알츠하이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강력한 항염증,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고, 근육통을 완화시키며, 혈압과 혈당을 알맞은 범위로 조정한다. 소화 기능 및 간 기능을 원활하게 해서, 팽만감 및 경련을 완화시키고 지방 연소를 촉진시켜 식사 후 마시는 차로도 적합하다. 항산화 및 수렴 작용은 모발과 피부의 손상과 노화를 막아주며, 상처의 치유에도 도움이 된다. 17세기 영국의 약초학자 니콜라스 컬페퍼는 “모든 종류의 감기, 건망증, 두통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로즈메리를 설명하기도 했다.

 

꿀풀과에 속하는 다년생 상록관목인 로즈메리의 고향은 지중해 연안,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지만 추위에도 강한 편이어서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한국의 추운 겨울에도 실내에 두고 잘 관리한다면 여러 해에 걸쳐 계속 키울 수 있다. 가뭄에도 강한 편이어서, 물주기를 자주 깜빡하는 식물 집사에게도 알맞다. 다만 과습을 매우 싫어하므로 물을 너무 자주 주지 않는 편이 좋고, 실내에 둘 경우엔 반드시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곳이어야 한다.

 

수확한 로즈메리 잎은 생잎 그대로, 혹은 잘 말려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향이 무척 강한 편이어서, 요리에 쓸 때는 아주 적은 양부터 시작해서 필요한 정도로 양을 조금씩 늘려가는 편이 좋다. 모든 종류의 육류와 잘 맞는 편이지만 담백한 느낌의 가금류, 그리고 뿌리채소와 잘 어울리는데, 허브를 활용한 요리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보자에게 가장 추천하는 메뉴는 간단한 ‘로즈메리 감자구이’이다. 한입 크기로 잘게 자르거나 채썬 감자에 버터나 오일, 적당량의 소금과 후추를 버무린 후, 로즈메리 잎을 고루 뿌려서 오븐이나 프라이팬에 구워내면 된다. 늘 먹는 밥을 독특한 방식으로 조리해보고 싶다면 ‘로즈메리 밥’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평소처럼 밥을 하되, 손가락 길이의 로즈메리 마른 가지 2~3개와 소금 몇 자밤, 올리브 오일을 넉넉히 둘러 조리하면 서양 요리에 잘 어울리는, 로즈메리 풍미가 향긋한 밥이 된다. 잘 마른 로즈메리 가지를 식초에 넣어 3~4주 동안 우리면 ‘허브식초’가 되는데, 샐러드 드레싱으로 적합하다. 같은 방식으로 오일에 넣어 우린 ‘허브오일’ 역시 파스타용, 드레싱용으로 두루 활용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자세한 배경이나 활용법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로즈메리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하나의 허브 안에 이토록 오랜 역사와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허브를 생활 속에 가까이 두고, 그 이로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수천 년 넘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대대로 쭉 이어져온 ‘식물과 함께 하는 삶’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이 이끌린다면, 로즈메리의 산뜻한 향기와 함께 당신만의 첫 발걸음을 시작해보면 어떨지.

 

 

글 강수희 (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bear.tiger.herb)’와 ‘코너샵(@hi_corner_shop)’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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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이야기2023. 5. 2. 18:09

월간 일류도시대전 4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봄날의 샛노랑 요정, 민들레

불청객 잡초가 아닌 요모조모 몸에 이로운 고마운 친구

 

 

말끔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하는 정원사들에겐 민들레가 원망의 대상이다. 부지런히 없애고 없애도 어디선가 날아와 다시 고개를 드는 불청객이기 때문이다. 논밭의 작물을 지키려는 농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눈에 들어오는 족족 뿌리째 뽑혀나가곤 하는 말썽꾼이다. 하지만 이렇게 홀대받는 민들레도, 아이들에겐 솜사탕 모양의 후후 불어 날리기 좋은 장난감이 되고, 약초를 활용하려는 이들에게는 두루 쓸모 많은 고마운 존재가 된다. 어떤 식물이 잡초인지 아닌지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이처럼 완전히 달라진다. 주어진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서 똑같은 식물이 잡초로 여겨지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다는 게 참 공교롭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잡초’란 무엇일까. ‘섞일 잡’에 ‘풀 초’로 이뤄진 ‘잡초’라는 단어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풀’이라고 국어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다. 일부러 심고 애써 돌봐야 자라는 작물에 비해, 스스로 번식하는 잡초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생명력은 잡초만의 놀라운 능력이자 생존수단이다. 땅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려서 적극적으로 영양분을 흡수하는 잡초에는, 재배된 작물에서 섭취하기 어려운 미네랄과 영양소가 풍부하다. 아무 생명체도 살지 않는 황폐한 땅에 기어이 찾아들어 뿌리를 뻗고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토질을 차차 회복시키는 역할도 한다. 잡초에 관한 어느 책의 제목처럼, ‘대지의 수호자’라는 이름이 꼭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살짝 벗어나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면, 잡초는 생태계 안에서 자기 몫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살아가는 하나의 구성원이다. 잡초를 마냥 미워하며 몰아내기보다, 마음을 열고, 더 자세히 알아보고, 쓸모에 맞게 활용한다면 어떨까. 훨씬 더 이롭고 즐거운 공존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길가, 들판, 산속, 심지어 아주 작은 틈새까지,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샛노랑 환한 얼굴의 민들레는 모든 부분이 다 약으로 쓰인다. 잎과 꽃, 뿌리에서부터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즙까지 어디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 약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해독작용이 뛰어나서 간에 이롭고, 혈당 조절 및 이뇨 작용을 돕는다. 열을 내려주고 염증과 붓기를 다스리는 효과가 있으며 소화기능을 원활하게 한다. 비타민과 미네랄, 항산화물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면역력을 높여주며, 줄기의 단면에서 나오는 하얀 즙은 벌레에 물렸을 때 가려움을 진정시키기 위해, 또는 사마귀를 없애기 위해 꾸준히 바르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렇듯 사람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 아닌 다른 존재들에게도 민들레는 두루 이로운 영향을 끼친다. 민들레 씨앗은 작은 새들의 먹이가 되고, 또한 이른 봄부터 개화하기 때문에 배고픈 꿀벌들에겐 어려운 시기의 소중한 영양 공급원이 된다. 꿀벌들을 유인하므로, 벌의 수분이 꼭 필요한 과일이나 채소는 민들레를 가까이 자라게 두면 더 활발한 수분이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 더해 땅속 깊이 뻗어나가는 민들레의 뿌리가 미네랄과 질소 등 풍성한 영양분을 위쪽으로 퍼뜨려서, 주변 작물들이 더 건강하게 자라게 된다.

 

순우리말인 ‘민들레’라는 이름은 ‘문’의 ‘둘레’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추정된다. 영어 이름 ‘dandelion’은 사자lion의 이빨dent이라는 의미인데, 삐죽빼죽한 잎의 톱니 모양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그리스, 로마에 걸쳐 두루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중세 수도원의 정원에서는 약용 및 요리용으로 재배되었다. 중국의 전통의학에도 ‘포공영’ 혹은 ‘포공초’라는 이름으로 여러 의학서에 등재되었다. 최근 들어 민들레의 약효가 널리 알려지면서 즙, 환, 추출물 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들이 유통되고 있으나, 검증된 절차를 거쳐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구입 전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민들레를 직접 채취하려면, 중금속 매연 등 오염 물질이 없는 청정 지역인지부터 먼저 확인해야 한다. 여린 잎은 생잎 그대로 먹어도 되지만, 특유의 쓴맛을 제거하고 싶다면 찌거나 데친 후 양념을 버무려 먹으면 좋다. 잎과 꽃은 잘 건조시켜 약재로 쓸 수 있고, 말린 뿌리를 덖은 후 잘게 썰거나 분쇄해서 ‘민들레 커피’로 마실 수 있다. 열을 가하면 신맛과 고소한 맛을 내는 이눌린 성분이 뿌리에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인데, 서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커피 대용품으로 활용되었고, 카페인 섭취를 줄이려는 이들에게 큰 관심을 얻고 있다. 한편 민들레 꽃과 잎, 뿌리를 소주나 보드카 등 도수 높은 알코올에 담가 장기 숙성시키면 '민들레술'이 된다. 이러한 담금술을 서양 허브의학에서는 ‘팅쳐tincture’ 라고 부르는데, 알코올에 약성을 잘 우려낼 수 있고, 장기 보관이 가능하며, 손쉽게 활용할 수 있어 가정의 상비약으로 줄곧 쓰였다.

 

단, 과잉 섭취 혹은 장기 복용할 경우 소화장애, 복통 등 신체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체질에 따라 간혹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으므로, 약으로 이용하려는 경우 사용 전 반드시 소량으로 테스트를 거치는 게 좋다. 그러나 민들레 자체에는 독성이 전혀 없으므로, 단기간 섭취할 경우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참고로 ‘민들레’는 민들레속 식물 전체를 포함한 명칭이고 우리나라에는 약 10여 종이 자생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살아온 토종민들레는 따뜻한 남부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고, 1900년대 초 유입되어 온 귀화식물 서양민들레가 지금은 훨씬 더 흔하다. 토종민들레는 4~5월 한 번만 꽃이 피지만, 서양민들레는 봄부터 초가을까지 여러 번 꽃을 피우며 더 널리 퍼져나가고, 도시 환경에 잘 적응하는 등 번식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토종민들레는 꽃 아래 총포가 꽃을 감싸는 형태, 서양민들레는 총포가 벌어져 있는 형태여서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모습이나 빛깔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특성이나 약효는 비슷한 편이다.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잡초란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아직 그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놀랄 만큼 커다란 가치를 품고 있는 민들레에게 올 봄,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보면 어떨까.

 

* 잡초와 더욱 친하게 지내고 싶을 때, 참고하면 좋을 책

- 잡초 치유 밥상 / 권포근 고진하 지음

- 고맙다 잡초야 / 황대권

- 전략가, 잡초 / 이나가키 히데히로

- 정원 잡초와 사귀는 법 / 히키치 가든 서비스

- 미움 받는 식물들 / 존 카디너

 

글 강수희(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instagram.com/bear.tiger.herb)’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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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이야기2023. 5. 2. 18:08

월간 일류도시대전 3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약초들의 어머니, 쑥

동서양의 전통의학에서 오래도록 활용되어 온 고마운 허브

 

 

단군신화 속 곰과 호랑이가 동굴 안에서 먹던 풀, 누구나 알고 있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고, 일상 속에서 수시로 접하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허브는 아마도 쑥일 것이다. 제철인 봄에 주로 즐겨먹지만, 쑥떡이나 쑥차처럼 쑥이 들어간 음식은 사시사철 쉽게 접할 수 있다.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사우나에서도, 뜸으로도, 향으로도, 모깃불로도.. 폭넓은 분야에 걸쳐 쑥은 요모조모 알차게 활용된다. 어떻게 보면 너무 자주 흔하게 만날 수 있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커다란 가치를 우리가 잘 눈여겨보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데서나 쑥쑥 잘 자라서 ‘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쑥의 학명은 ‘아르테미시아’, 그리스 신화 속 다산과 풍요의 신인 아르테미스로부터 비롯된 이름이다. 동서양을 아울러 전통의학의 긴긴 역사에서 쑥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고대 로마제국의 의사였던 갈레노스가 생리불순에 쑥을 처방했다는 기록이 있고, 로마의 군인들은 행군에 앞서 발병을 막으려고 샌들 안에 쑥을 넣었다고 한다. 중세 유럽 약초학자들에게는 ‘약초들의 어머니’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며 피부병 및 염증 치료에 쓰였고, 홉을 대신하여 맥주 제조에도 활용되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오래된 병과 하혈을 낫게 하며, 복통을 멎게 한다”고 언급되었으며, 중국의 이시진이 쓴 의학서 ‘본초강목’에도 '속을 덥게 하고 냉을 쫓으며 습을 없앤다'는 기록과 함께 상세한 처방이 안내되었다. 한편, 4세기 경 출간된 의학서 '주후비급방'의 개똥쑥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한 중국의 투유유 교수는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현대의학에 비하면 구식이고, 미신에 가까우며,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괄시받았던 전통의학이 투유유 교수의 수상 이후로 다시금 폭넓게 재조명받고 있다.

 

국화과 쑥속(Artemisia)에는 약 470여 종에 이르는 식물이 속해 있고, 우리나라에는 쑥, 사철쑥(인진쑥), 황해쑥, 개똥쑥 등 저마다 다른 특성을 지닌 쑥이 약 20여 종 이상 자생하고 있다. 봄철에 뜯어먹는 부드러운 어린 쑥을 ‘애쑥’이라고 부르고, 말려서 약재로 활용하는 쑥을 ‘약쑥’이라고 부른다. 쑥국이나 쑥떡처럼 음식으로 먹을 때는 단기간 적은 양을 섭취하므로 쑥의 종류에 대해 반드시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약으로 쓸 경우에는 꼭 원하는 목적에 알맞은 종류인지를 확인하고, 적절한 용법과 용량을 전문가와 상의한 후 복용해야 한다.

 

따뜻한 성질을 지닌 쑥은 피가 잘 순환하도록 돕고, 단백질, 칼슘, 비타민A·B2·C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면역력을 높여준다. 또한 섬유질이 장의 연동운동을 원활하게 해서 변비 해소를 돕고, 활성 산소를 억제하는 타닌 성분이 세포의 노화를 방지한다. 상쾌함이 느껴지는 독특한 향기는 시네올(cineole)이라는 성분에서 비롯되며, 유파틸린, 자세오시딘 등의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항염증, 항균작용을 돕는다. 특히 여성에게 이로운데, 생리불순을 낫게 하고 생리통을 완화시킨다. 소염 및 지혈작용을 해서 피부건조증이나 알레르기성 염증에도 도움을 준다. 야외 활동 중 벌레에 물렸을 때, 생잎 그대로 짓이겨서 가려운 부위에 바르면 통증과 가려움을 낮춰준다.

 

쑥을 캘 때, 혹은 구입할 때에는 반드시 매연이나 중금속에 오염되지 않은 땅에서 자란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요리 재료로 쓰려면, 쑥을 엷은 소금물에 잠시 담가놓았다가 여러 번 헹구어서 요리하면 푸른빛을 잘 살리면서 쓴맛을 없앨 수 있다. 싱싱할 때 최대한 빨리 섭취하는 게 좋지만 보관이 필요한 경우엔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보관하거나, 또는 한 번 먹을 분량씩 소분하여 냉동실에 보관할 수 있다. 습기가 남지 않도록 완전히 잘 말려 보관하면 두고두고 쑥차로 마실 수 있다.

 

쑥국, 쑥떡, 쑥버무리, 쑥라떼.. 많고 많은 쑥요리 중에서 무척 쉽고 간단해서 내가 가장 즐겨 만드는, 그리고 외국인 친구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았던 메뉴는 ‘쑥 부침개’, 영어로는 ‘mugwort pancake’이다. 어린 쑥 한 움큼을 가위로 대충 썰고, 묽은 밀가루 반죽에 섞은 다음, 넉넉히 기름을 두른 팬에서 중불로 노릇노릇 잘 부치면 10분도 걸리지 않아 근사한 한 접시가 뚝딱 완성된다. 쑥의 그윽한 향기를 고스란히 품은 채로 바삭바삭 고소하게 잘 부쳐진 ‘쑥 팬케이크’는 미국인 남편도, 일본인 이웃도, 대만인 친구도, 맛을 본 모두가 엄지를 척 치켜세우며 ‘정말 맛있다!’고 감탄하곤 했다. 재료비는 거의 공짜인 셈인데, 자연이 건넨 이 ‘쑥’이라는 선물 덕분에 특별한 맛을 모두에게 선사할 수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뿌듯해했고 고마워했다.

 

‘서양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을 약처럼, 약을 음식처럼 쓰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한의학에서도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음식은 한 뿌리라는 점을 줄곧 강조하고 있다. 동서양에 걸쳐 두루 이어져 온 이 놀라운 지혜를 즐겁게, 손쉽게, 그리고 맛있게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음식, 아니 약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올봄엔 쑥을 더 자주 접하며, 쑥과 더 친하게 지내보자. 쑥의 향기를 마음껏 음미하고 즐기는 동안, 건강이 절로 우리에게 찾아들지도 모른다.

 

 

 

글 강수희(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instagram.com/bear.tiger.herb)’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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