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렌딩 허브차2020. 2. 27. 18:49




히말라야의 꽃 

Flowers of Himalaya


상쾌한 민트에 상큼한 신맛이 더해지면 더더욱 상콤! 산뜻! 입안이 그저 환-해집니다. 처음 그 놀라운 상콤함을 만난 건 2013년 봄, 몇 주 동안 머물렀던 인도 북부, 히말라야 자락의 다람살라에서였어요. 동네 작은 가게에서 구할 수 있는 차 종류가 얼마 없었는데, 독특하게도 민트와 로즈힙이 반씩 섞인 차를 발견하고서 궁금해하며 데려왔지요. 난방이 안되던 추운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돼지꼬리'라고 부르는 작은 히터로 끓인 물에 필터 없이 후후 불어가며 마셨던 그 로즈힙 민트티, 처음엔 신맛이 영 낯설었는데, 익숙해지니 민트의 화한 맛에 시큼한 달큼함이 어우러진 그 조합이 마음에 들어서 즐겨마시게 되었지요. 


새로 데려온 허브들 중에서, 신맛이 나는 베리 종류를 어떻게 섞어볼까 고민하다 그 로즈힙 민트티가 생각나서 비슷한 느낌으로 섞어보았습니다. 시원한 스피아민트와 홀리바질, 툴시를 바탕으로 하고, 각각 신장과 심장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는 주니퍼베리와 호손베리, 그리고 비타민c가 풍부한 히비스커스를 더했어요. 개성 강한 여러 맛들을 보드랍게 모아주는 역할로는 부드럽고 달콤한 엘더플라워와 라벤더를 섞었습니다. 그렇게 기억 속 느낌을 꼭 닮은, 마음에 쏙 드는 상콤하고 산뜻한 맛이 탄생했어요.


차를 만들 때 언제나 가장 고민되는 순간은 바로 '이름 정하기'입니다. 인도에서 온 허브들이 많고, 첫 아이디어도 다람살라에서 왔으니까 그쪽 지명이 들어가면 좋겠네, 하던 참에 아이디어가 퍼뜩 떠올랐어요. 봄에도 하얀 눈을 이고 있던 히말라야 아래, 정성껏 작은 화분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마음 고운 사람들이 사는 그 동네.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한 장면을 그리면서 '히말라야의 꽃'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그때의 기록과 사진을 함께 덧붙여요. 기회가 된다면 사진 속 환한 얼굴의 아가씨를 다시 찾아가서, 이 집을 떠올리며 만든 차를 선물로 건네고 싶네요. :-)



 

맥그로드 간즈 아랫마을에 있는 부토스쿨 공연을 보고 서둘러 윗마을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3주간 지내온 맥그로드 간즈를 떠나는 날이라 마음이 좀 울퉁불퉁했다. 정말로 여행의 막바지로구나, 하는 아쉬움이 제일 컸고, 그간 흠뻑 정들어버린 이 동네를, 여기 이 사람들을 떠난다는 생각에 조금 울적하기도 했다. 머무는 동안 생겨났던 좋았던 일들, 이날따라 유난히 날씨는 화창해서 조금은 야속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새 흠뻑 정들어버린 이 동네, 이 사람들, 그동안의 추억들, 분명 너무나도 그리워질텐데 이를 어쩌나. 곰곰해져서 걷는 중에 갑자기,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그룹 이름도 노래 제목도 알 수 없지만 분명 여러 번 들어본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의 노래였다. 나지막이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부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니, 이 작디 작은 마을에서 한국 노래를 듣게 될 줄이야.


바삐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집을 자세히 봤다. 앙증맞은 화분 몇 개가 창문 아래 나란히 놓인, 빛바랜 노랑색 벽에는 세월의 흔적이 있고, 작은 창문 안에는 빨간색 커튼이 달려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 어여쁜 집에 사는, 작은 화분들을 정성껏 가꾸는, 흥얼흥얼 한국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굴까 궁금해졌다. 문 앞에서 서성이는 동안 몇몇 장면들을 찍었고, 맞은 편 탁 트인 마을 앞 풍경을 담았다. 셔터소리가 너무 컸던 걸까. 창문으로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아, (손가락으로 집안을 가리키며) 코리아 뮤직, (다시 나를 가리키며) 아임 프롬 코리아" 라고 설명하자 그 얼굴이 활짝 웃었다. 짤막한 대화를 나누다가 활짝 웃는 얼굴 사진도 한 장 담았다. 예쁜 집, 예쁜 미소. 다음 번 맥그로드 간즈에 가게 될 때는, 작은 꽃들과 한국 노래들을 좋아하는 이 어여쁜 친구네 집도 다시 찾아가야겠다. :-)

_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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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솔밧
워크숍2020. 2. 21. 23:22

맨 처음 허브차 만들기 워크샵을 연 게 2018년도 여름이었다. 허브를 키우고 다듬고 모아 말리면서, 그 향기와 아름다움을 한껏 누리면서, 내 감각을 한껏 발휘해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맛의 차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낸 차를 일상에서 늘 두고 마시는, 소소하면서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만족감과 기쁨을 안겨주는 이 일을 혼자만 누리기에는 영 아깝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널리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하고 나서 쭉, 계속해서 좋은 공간과 좋은 사람들과 인연이 닿아 이어지면서 모두 합쳐 스무 번 가까운 워크샵을 열어왔다. 매번 워크샵을 진행할 때마다 조금씩 부족한 점들을 발견하고, 고쳐나가면서 내용은 많이 다듬어져왔지만, 들여다보면 맨 밑바탕은 한결같다. '나의 좋음을 더 널리 나누는 것'. 감사하게도 늘 그 마음을 아주 잘 알아주시는 분들과 함께, 한껏 행복한 시간을 누려왔다. 이번 한큐백화점에서 열린 워크샵도 그랬다. 
 
이 워크샵은 우리 공간이나 친구네 공간에서 작고 소박하게 열어온 워크샵들과는 달리 '아시아 북 마켓'이라는 큰 행사에 속한 워크샵으로 진행되었다. 그만큼 긴장도 부담도 컸는데, 걱정할 필요 없다고,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담담하게 해나가면 된다고 다독여준 패트릭의 응원 덕분에 차분히 준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떤 점이 부족했을까, 어떤 점을 더하면 좋을까, 여러 번 점검하고 고민하면서 필요한 도구를 새로 장만하고 (차를 섞을 때 더 편리하도록 큰 스텐볼을 샀는데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수업 자료를 다듬어 번역하고, 공부를 더 이어갔다. 이렇게 우리 공간이 아닌 밖에서 여는 워크샵의 가장 큰 어려움은 준비물들을 일일히 챙겨가야 한다는 것. 허브가 담긴 열댓 개 정도의 유리병과 틴들, 찻주전자, 저울과 스텐볼과 가위만으로도 이미 여행가방이 꽉 찼다. 허브차를 맛볼 컵은 아홉 개가 필요했는데, 가볍고 편한 일회용컵의 유혹도 없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아름답지 않으니까, 무엇보다도 내가 쓰고싶지 않으니까, 집에 있는 도자기컵을 모아서 천에 둘둘 말아 보냉백에 담았다. 이런 내 고집이 마음에 들어서 흐뭇했다.
 
첫번째 워크샵은 우리를 북마켓에 초대해주신, 행사 전체를 기획하신  IN/SECTS 매거진의 타카키씨가 통역을 맡아주셨다. 바로바로 참가자 분들의 질문을 알아듣지 못하고 매번 통역을 거쳐야 한다는 게 조금 어렵긴 했지만 다행히도, 미리 준비한 프린트물과 자료들을 펼쳐보이며, 바쁘신 중에도 쭉 워크샵을 도와주신 타카키씨의 도움 덕분에, 그럭저럭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재밌게도 두 꼬마들이 엄마와 함께 왔다. 한 꼬마는 오자마자 곧바로 잠들었고, 또 다른 꼬마는 엄마 옆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틈틈이 거들다가, 나중엔 직접 허브를 섞고 가위질하며 쭉 함께해주었다. 나이는 다섯살, 이름은 아키히로, '민트가 제일 좋아!'라는 아키히로의 취향대로 민트와 로즈마리가 듬뿍 들어간 에미코씨의 허브차는 시원한 향이 참 좋았다. 우아한 멋쟁이 유미씨는 피부에 좋다는 카렌듈라 인퓨즈드 오일을 궁금해하셔서, 자세한 자료를 메일로 보내드리기로 하고 주소를 받았다.   
 
두번째 워크샵은 오래 알고 지낸 친구인데다 마크로비오틱 요리사여서 허브에 대한 지식도 풍부한 카오리가 척척 통역해주어서 훨씬 수월했다. 원래는 신청자가 2명뿐이라고 해서 아주 널널하겠구나, 싶었는데 현장에서 신청한 3분이 더해지면서 첫번째보다 더 복작거렸다. 토요일 오후이다보니 관람객들도 아주 많았다. 몇몇 분들은 워크샵 부스까지 오셔서 자료들을 살펴보고 사진을 담으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패트릭이 담아준 사진들 속 풍경들을 봐도, 알록달록한 유리병들이 쭉 늘어선 테이블에 모여 따로 또 같이 허브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참 흥미롭고 재미있어 보인다. 이날 워크샵을 위해 열심히 모은 허브들 중에서 유난히 인기가 많았던 건 클로버, 똑 떨어져버려서 몇몇 분들은 다른 재료로 대체해야 했다. 제라늄과 시소와 쑥도 찾는 분들이 많았고, 안타깝게도 어성초는 아무도 쓰시지 않아서 앞으로 내가 더 예뻐해주기로 했다.  
 
쭉 바빴던 두 차례 워크샵이 끝나고 쉬다가, 7시부터는 'The Branch'의 활동을 주제로 한 토크쇼가 열렸다. 다큐 '자연농'부터 시작해서 여러 프로젝트와 활동을 통해 '자연과 사람을 잇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들려드렸다. 이번엔 토크쇼 진행자로 함께한 타카키 씨가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뜻깊은 활동을 더 널리 알리고 싶은데, 잡지를 만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우리가 왜 굳이 자연과 다시 이어져야 하는지 그 필요를 잘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질문을 했다. '자연과 가까이 이어지는 건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가장 기본이 된다. 오래 전 직장인으로 살던 땐 온종일 햇볕도 쬐지 못하고 자연과 아예 동떨어져 사는 게 참 답답했고, 지금은 에어컨 없이, 아주 소박하게, 작은 집에서 자연을 더 가까이 접하며 사는데 이게 전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는 식으로 답했는데, 여전히 그 질문이 마음에 남아 있다. 아마 우리의 숙제로 계속 안고 가야할 것 같다.
 
잘 기억해두고 싶어서, 떠오르는대로 적어나가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져버리고 말았다. 이 글을 적기 위해 오랜만에 다시 찾아본, 작년 이맘때 쓴 첫번째 허브 워크샵 후기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옮겨 적으며 마무리하고싶다. "맨 처음 'The Branch'를 구상할 때 그렸던 어렴풋한 그 그림을, 이렇게 차차 펼쳐가고 있다는 게 생생하게 실감났다. 오래도록 꿈꿔왔던 순간을 지금 누리고 있으니, 더 열심히 즐겁게 아름답게 내 일을 이어가야겠다고, 그날의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다시금 다짐했다."  참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우리가 원하는 일을 계속해서 펼쳐가게 된다. 꾸준히 더 널리 이어가게 된다. 이 감동과 고마움을 잊지않고 '더 열심히 즐겁게 아름답게 내 일을 이어가자'고, 또다시 같은 다짐을 한다.

 

 

Posted by 솔밧
_ 지금은 없는 차2019. 10. 27. 17:43

비 갠 후 숲

雨上がりの森

 

'비 갠 후 나뭇잎들은 더욱 알로록달로록 제 빛깔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이 글을 적기 전, 늘 하는 습관대로, 철자와 띄어쓰기를 확인하려고 국어사전에 '비 갠 후'를 쳐봤더니 나온 예문이에요. 이 이름을 떠올리면서 상상했던 풍경 그대로여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알로록달로록이란 표현도 참 곱지요.

 

이 블렌딩 차는 특별하게도, 전세계에서 온 재료들이 두루 사이좋게 어우러졌어요. 훌라댄스를 추는 친구가 선물해준 하와이 허브, 여행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출장길에 가져다준 페루 허브, 스페인 올리브농장에서 온 올리브 나뭇잎, 부산 친구가 손수 말려 선물한 귤피, 지난 여름 양산에서 직접 따온 딸기잎, 나가노현에서 얻어온 초피잎, 저희 동네에서 난 로즈마리와 캣닙과 펜넬과 툴시, 샌프란시스코 허브 회사에서 온 히비스커스와 레몬그라스. 이밖에도 여러 다양한 허브들을 모아 모아 모아 섞었어요. 보통은 단순한 블렌딩을 선호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축제처럼 왁자지껄 다양한 허브들을 한데 모아보는 것도 참 즐겁습니다. 상콤하면서도 살짝 매콤하면서 은은한 단맛이 맴도는 맛도 아주 마음에 들고요. 알로록 달로록 빛깔 고운 가을에 잘 어울릴 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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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솔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