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허브 꾸러미' 구독 회원분들께 발송했던, 블렌딩 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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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여름 한 달 동안 머물렀던 스코틀랜드 '킹혼'의 들판입니다 :-)
계절의 허브차 06 _ ‘향기로운 초원에서’
2024. 8.31
안녕하세요! 8월의 맨 마지막날, 선풍기 바람을 쐬며 ‘가을맞이 허브 꾸러미’의 편지를 적고 있습니다. 여전히 한낮 햇볕은 뜨겁지만, 아침 저녁 바람은 선선해서 가을이 살금살금 다가오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무덥고 꿉꿉한 날씨가 오래 오래 이어졌지요. 한창 더울 때는 평소처럼 일상을 이어가는 게 어려울 만큼 몸이 몹시 버거워하는 게 느껴졌는데요, 제가 돌보는 허브들 중에서도 날씨를 잘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버리고 만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런가 하면 바질이나 오크라 같은 허브들은 풍성한 햇볕과 높은 온도가 반가웠는지 더더욱 튼실하게 잘 자라더라고요.
지난 번 꾸러미 편지에서 ‘어쩌면 다음 꾸러미 허브차에는 오늘 옮겨 심은 그 허브들을 거두고 말려서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라고 적었는데요, ‘열심히 모아서 거두자’는 목표를 마음속에 세워놓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습니다. 덕분에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이번 블렌딩 허브차의 상당량을 저희 작업실 앞 허브들로 만들게 될 수 있었어요. 작년부터 쭉 키우고 있는 레몬밤과 레몬버베나와 민트들, 봄에 뿌린 씨앗서부터 자라난 홀리바질과 자소엽, 대전천에서 틈틈이 거둬온 수레국화와 토끼풀, 정작 딸기는 몇 알 거두지 못했지만 풍성하게 자라준 딸기잎. 이렇게 내내 함께하며 정이 든 풀들의 이름을 적면서 지나온 여러 날들, 그때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납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지휘자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 씨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런 말을 했대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음악을 왜 시작했는가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잖아요. 모든 음표에 행복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말이 ‘모든 일, 모든 작업, 모든 손길에 행복이 있어야 합니다’ 라고 읽혔어요. 실제로 제가 허브 다루는 일을 할 때, 이 일이 참 행복하구나, 느낄 때가 아주아주 많았거든요. 아침볕을 받으며 허브에 물을 줄 때 눈에 들어오는 그 반짝임, 수확한 허브들을 씻을 때의 싱그러운 풀향기, 파삭하게 잘 마른 허브에서 풍겨오는 그윽하고 깊은 향기, 허브 자료를 찾고 공부할 때 느껴지는 감동과 책임감, 아이디어를 총동원해서 블렌딩을 고안할 때의 즐거움..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많은 행복과 기쁨의 조각들이 이 허브차에 담겨 있습니다. :-)
로즈제라늄, 딸기잎, 레몬밤, 민트, 자소엽, 수레국화, 홀리바질, 토끼풀,
시데리티스, 라즈베리잎, 로즈마리, 민들레, 세이지, 톱풀, 쑥, 엘더베리, 엘더플라워
첫번째 줄의 허브들이 모두 제가 키우거나 거둬온 것들, 두번째 줄부터는 멀리서 온 허브들인데요, ‘시데리티스’ 라는 이름이 낯설지요. 저도 이번에 처음 만나본 허브였는데요, Greek mountain tea, 혹은 ironwort 라고도 부른대요. 얼마 전 그리스 Corfu 섬에 다녀온 친구가 가져다주었는데요, 찾아보니 고대 그리스의 여러 기록들에도 등장하는 오래된 약초이면서, 그리스 어느 가정에서나 일상적으로 차로 마시고 약으로도 쓰는 친근한 약초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인데도, 고마운 이 친구 덕분에, 그리고 이 약초 덕분에 그리스의 풍경이 성큼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해발 1,000미터 이상의 산악지대에서만 자란다는 ‘시데리티스’의 모습을 상상해보는데, 몇 해 전 가봤던 북부 이탈리아 알프스 자락의 마을, 그리고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스코틀랜드 외곽의 들판 풍경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오르더라고요. 그러면서 절로 흥얼거려지는 멜로디가 있었습니다. 오래 전 즐겨듣던 비틀즈의 ‘Till There Was You’ 라는 노래인데요, '새벽녘 이슬 맺힌 달콤한 향기의 초원에서'(in sweet fragrant meadows Of dawn and dew) 라는 대목이 나와요. 막연히 떠올려보았던 이 허브차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져서, ‘향기로운 초원에서’를 이름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https://youtu.be/uDxCg1nxUko?si=ENNV4eFaCYlPWCso
이제 9월이 오면, 더위가 떠나고 나면, 계속 미뤄졌던 작업실 준비작업에 더 매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가오는 10월 중순에는 작은 산속 음악회와 함께, 이곳 공간 오프닝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일정이 잡히는 대로 자세한 소식을 전할게요. 아침 저녁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무척이나 기분 좋은 늦여름 초가을 사이의 날들에, 크고 작은 기쁨과 아름다움들이 함께 하는 날들을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번 ‘향기로운 초원에서’ 허브차가 그런 순간들에 깃드는 좋은 벗이 되어주길 바라며, 평온한 티타임 누리셔요. 늘 고맙습니다.
2024년 8월의 끝날, ‘곰과 호랑이 허브’ 강수희 드림
2016년 여름 찾아갔던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자락의 마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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