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지금은 없는 차2022. 1. 11. 16:49

일본 나라현 주최로,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생태예술축제 『奈良・町家の芸術祭 はならぁと』 https://hanarart.jp

 

저희 City as Nature 팀은 'City as Weeds' 라는 주제로, 목판화 프린트, 그림, 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을 한 공간에 모아 전시합니다. 그리고 '곰과 호랑이 허브' 에서는 도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네 가지 풀들, 질경이, 쑥, 민들레, 토끼풀에 대해 알리고, 그 풀들을 모아 만든 블렌딩 허브차를 전시 및 배포할 예정입니다. 질경이의 덤덤한 맛, 쑥의 그윽하면서 쓴 맛, 민들레뿌리의 구수한 맛, 그리고 토끼풀의 달달하고도 보드라운 맛이 모아진 이번 블렌딩 허브차, "풀의 지혜"는 둥그스름한 흙내음과 향긋한 풀내음에 푸근하게 감싸이는 느낌을 줍니다.

 

-

 

'풀의 지혜'

_ 질경이, 쑥, 민들레, 토끼풀

 

: 공원, 길가, 보도블럭 틈새까지.. 어디에서나 흔한 이 풀들은 보통 '잡초'로 불리우고, 뽑아 없애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오랜 역사에 걸쳐, 전세계 다양한 문화권에서 이 풀들은 모두 '약초'로 쓰여왔다. 해독작용, 면역력 증진, 혈액순환 촉진, 항산화 효과, 소화 촉진 등 여러 이로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풀의 지혜' 블렌딩 허브차는 푸근하고 편안한 향으로 하루 중 어느 때나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우려내고 난 잎은 건강한 피부를 위해 스크럽, 찜질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Posted by 솔밧
허브편지2022. 1. 10. 18:37

곰과 호랑이 허브 _  초가을의 허브편지

: 허브를 다루면서 떠올린 생각들, 널리 나누고픈 이야기들을 친구에게 편지쓰듯 적어봅니다 ;-)

 

 

 

 

1. 볕 좋은 가을날, 잎사귀와 씨앗을 부지런히 거둡니다.

 

추석이 코앞, 9월의 절반이 막 지났습니다. 지난 주에는 아침저녁으로 꽤나 선선해서 가을이 점점 깊어지는구나 싶더니, 이번 주에는 여름이 되돌아온 것처럼 한낮엔 참 덥네요. 남쪽 지방에는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데.. 이곳 대전은 이틀 연속으로 구름 없이 쾌청한 가을하늘 아래 햇살이 눈부십니다. 이 가을볕을 넉넉히 쬔 마당의 허브들이 쑥쑥 잘 자라서, 매일 아침 부지런히 거두어 말리고 있어요. 저번 편지에서 소개했던 홀리바질이 특히 잘 자라서 엊그제부터는 꽃대까지 쑥쑥 올라오고 있네요. 아직 꽃보다는 잎사귀를 더 얻고 싶어서, 꽃대가 눈에 보일 때마다 똑똑 잘라주면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고 있답니다. 늦가을 무렵에는 꽃을 피우게 그대로 두었다가, 내년을 위한, 나눔을 위한 씨앗을 거두려고 해요.  

 

일찌감치 거두어 모으고 있는 씨앗도 있어요. 여름 내내 열심히 꽃을 피워주었던 '미국나팔꽃', 지난 봄 동네 등산로에서 한 줄기를 데려와 상자텃밭에 심었는데요, 열심히 팔을 뻗으며 자라서 저희 집 '초록 커튼'의 큰 몫을 담당해주었던 친구랍니다. 은은한 연파랑 빛깔이 참 곱고, 아침에 피었다가 낮에는 휙 저물어버리고, 다음날이면 또다시 활짝 피는 씩씩한 모습이 좋아서 정성껏 잘 돌보았어요. 꽃 진 자리마다 동그란 씨방이 맺혔는데, 얇은 껍질 안에 쌔까맣고 단단한 씨앗이 알차게 들어있네요. 살뜰히 잘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씨앗나눔을 하려고 해요. 나팔꽃의 꽃말은 '기쁜 소식', 매일 퐁퐁퐁 피어나는 파란 꽃처럼 이 씨앗이 가닿아 피어날 곳에서, 날마다 기쁜 소식들 가득하다면 좋겠습니다.

 

 

 
 
 
 




2. 홍성 행복농장, '곰과 호랑이 허브'의 첫 출장(!) 후기

 

지난 주에는 홍성으로 하루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사회적농업, 치유농업을 오래도록 이어오고 계신 '협동조합 행복농장'에서 정신건강에 이로운 허브차를 만들고 싶다고,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연락해오셨고, 기쁜 마음으로 그 작업을 거들게 되었습니다. 천천히 농장을 둘러보고, 제가 챙겨간 '거북섬'과 '맑은 기쁨이 솟는 샘' 허브차를 함께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마음의 안정과 평화에 도움을 주는 허브들 위주로, 제가 시험 삼아 새로운 블렌딩을 먼저 개발해보기로 했고, 10월 말에 다시 찾아가서 새 블렌딩 허브차를 같이 맛보면서, 직원분들을 대상으로 한 블렌딩 워크샵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한가득 챙겨주신 허브 보따리를 안고, 무궁화호 두 번 타고 대전까지 돌아오는 길 내내 큼직한 그 허브 보따리에서 레몬버베나 향기가 폴폴 풍겨서 참 즐거웠답니다. 제가 그동안 조금씩 익혀온 허브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곳에서 잘 쓰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흐뭇해했고요. 아래는 '행복농장'의 소개 영상이랍니다.

 

https://youtu.be/Vr4wsY3vZ90

 
 

"행복농장은 100% 유기농법으로 바질, 애플민트, 와일드루꼴라 등의 허브와 꽃과 채소 모종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재배한 작물을 가공하여 바질페스토와 허브차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농업과 돌봄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 것인가를 지역의 농장과 협의하는 협동조합 형식의 농장입니다."

 

 

 
 
 
 
 

 

3. 놀라운 풀, 성요한초 (세인트존스워트)

 

이번 주에는 홍성에서 얻어와서 잘 펼쳐 말린 레몬버베나, 그리고 성요한초를 주재료로 해서, 요리조리 섞어보며 여러 블렌딩을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레몬버베나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상큼하고 시원한 레몬향이어서 블렌딩 없이 그냥 단독으로만 마셔도 참 좋은데요, 이에 비해 성요한초는.. 맛이.. 좀.. 쓰고 텁텁한 풀맛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 수더분한 맛의 풀이 정신 건강에 무척 이로운 효능을 지니고 있고, 서양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폭넓게 잘 쓰여왔다고 해요. 제가 좋아하는 책 <허브>에서 추려 인용해봅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성요한 축일(6/24)이나 축일 전날 밤에 성대한 축제들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성요한초로 만든 화관을 쓰고 춤추면서 풍년을 기원하고, 가축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기도하며 이 식물을 불에 던졌다. 성요한초는 주술을 피하기 위해 부적삼아 지니고 다녔으며, 폭풍우가 몰아치면 벽난로에 던져 넣었고, 못된 요정이 아이를 바꿔치지 못하도록 어린이의 침대 난간에 묶어놓거나 마녀가 사는 집의 문지방 밑에 묻어두기도 했다."

 

"성요한초는 다른 어느 식물보다도 의학적 용도에 많이 쓰이는 식물로 꼽힌다. 학자들은 이 식물의 항균, 항생, 소염, 항우울, 항바이러스적 성질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가벼운 증상의 우울증, 근심, 신경성 불안, 불면증, 신경통, 신경성 두통, 편두통 등을 고치는 데 효과적이다. 뇌경련, 신경쇠약, 뇌혈관동맥경화증, 폐경기로 인한 우울증에도 효과 있다. 이 식물을 복용하면 순환기가 강화되고 위, 간, 담낭의 분비샘 활동이 활발해지며 위장장애, 소화불량, 설사에 효과가 있다. 그러나 많은 양을 복용할 경우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가의 지시를 받아 사용해야 된다. 꽃과 잎을 기름에 섞어 만든 연고는 염좌, 부은 데, 근육경련, 요통, 관절염, 류머티즘 등에 발라준다."

 

행복농장 최정선 이사님과 이야기 나누던 중에 '맞아요! 정말 그래요!' 하고 적극 동의했던 부분, '아무리 그 효능이 좋아도, 맛이 없으면 아예 손이 가지 않게 되니까, 이왕이면 맛도 좋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어요.' 라는 말씀이었답니다. 저 역시, 몸에 좋다고 해서 호기심에 사봤다가 영 손이 가지 않아서 멀리하고 있던 먹을거리들, 마실거리들이 꽤 있었거든요. 그래서 맨 처음 허브차를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되도록이면 즐겁게,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도록!'을 목표로 삼아서, 허브차를 마실 때의 향, 맛, 느낌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풀 같고 쓴 느낌의 성요한초의 개성을 잘 잡아줄만한 다른 허브들.. 다행히도 향 좋은 레몬버베나를 넉넉히 얻어왔고, 저희 집에서 잘 키우고 말려 모아둔 신선한 민트들이 가득하고, 개성 있는 맛으로 악센트를 더해줄 타임, 은은한 향기를 입혀줄 라벤더 같은 친구들이 두루 대기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블렌딩을 계속 시도해보면서 제 마음에 드는 조합을 서서히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거쳐 과연 어떤 차가 만들어질지, 저도 무척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

 

 

 
 
 

 

 

덧붙임)

 

이 글을 쓰면서 검색하다보니.. 성요한초가 우울증 치료제로, 갱년기에 좋다고 널리 알려지면서, 캡슐/알약 제품으로 무척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네요. 그런데 과하게 드실 경우엔 간에 무리가 가고,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고 해요. 제가 이 글에서 적고 있는 것처럼, 따로 가공/처리하지 않은 마른 풀을 차로 우려서 마시는 정도는 괜찮겠지만, 약 형태로 만들어진 걸 드실 때는 꼭!! 용량이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알약이나 캡슐은 간편해서 좋을 수도 있지만, 좀 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차로 우려서 직접 그 풀의 향기와 맛을 느껴보면서 섭취하시는 게 더 이롭지 않을까.. 싶어요. 따뜻한 잔을 손에 쥐고, 향기를 흠뻑 들이마시면서, 천천히 차를 마시는 그 시간 자체가 치유가 되기도 하니까요. 이번 블렌딩 허브차 계획이 부디 잘 진행되어서, 나중에 '행복농장'에서 맛도 좋고 효능도 좋은 성요한초 블렌딩 허브차를 판매하게 된다면 정말 좋겠네요..!!

 

 

 

 

 

 

'허브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날의 허브편지  (0) 2022.11.05
이른봄의 허브편지  (0) 2022.03.19
한겨울의 허브편지  (0) 2022.01.18
늦여름의 허브편지  (0) 2021.08.12
Posted by 솔밧
허브편지2021. 8. 12. 21:31

곰과 호랑이 허브 _  늦여름의 허브편지

: 허브를 다루면서 떠올린 생각들, 널리 나누고픈 이야기들을 친구에게 편지쓰듯 적어봅니다 ;-)

 

 

 

 

입추가 지나자마자 아침 저녁 공기가 확실히 선선해졌어요. 한낮에는 햇볕이 꽤 뜨겁고요. 한동안 소나기가 자주 쏟아지더니, 이제는 비구름도 싹 걷혔는지 쭉 맑아서, 허브를 거두고 말리기에 딱 좋은 날씨입니다. 세상 모든 일들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허브를 다루는 일은 혼자 서두른다거나, 아니면 내 편의에 맞춰 일부러 흐름을 늦춘다거나 할 수가 없더라고요. 마땅한 때에 맞춰서, 필요한 일들을 하고, 또 그렇게 일을 할 때는 서두르지 말고, 충분히 잘 집중하고.. 어디서나 듣는 흔한 말이지만, 정작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는 걸 매번 실감하고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허브를 거두고 말리면서, 오래오래 이 흐름을 반복하다보면 언젠가는 익숙해질까, 좀 더 자연스러워질까.. 기대해봅니다. 

 

오사카에서는 손바닥만한 밭이나마 집 가까이에 있어서 참 좋았는데, 대전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는 밭 없이 (내년엔 꼭 텃밭을 얻을 수 있기를!!) 저희 집, 단독주택의 2층 마당에 만들어놓은 상자 텃밭 몇 개를 가꾸고, 그리고 이따금 동네 보문산에 가서 채집을 합니다. 자그마한 상자 텃밭 다섯 개가 전부이지만, 이사오자마자 부지런히 심은 허브들이 쑥쑥 잘 자라고 있습니다. 늘 그렇듯 민트들이 제일 왕성하고, 딱 한 그루씩 있는 라벤더랑 로즈마리는 너무 더디고... 한 달 넘게 소식이 감감해서 싹이 하나도 안 텄구나, 마음을 접었던 홀리바질이 느릿느릿 고개를 내밀기 시작해서, 지금은 무려 여섯 그루나 돼요. 아직 다들 어려도, 쑥쑥 신나게 무럭무럭 잘 크고 있어서 무척 기쁘답니다. 

 

이 홀리바질은 3년 전 니가타 여행 때 찾아갔던 홀리바질 전문 농장에서 얻어온 씨앗으로 키우고 있어요. 바질을 닮았으면서도 또 민트처럼 상쾌하고 달콤하기도 한 그 향기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어서,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허브입니다. 태풍을 맞아 쓰러진 허브들을 거두고 정리하는 일을 도와드리고 나서, 커다란 다발 두 개와 씨앗을 얻어왔는데요, 오사카로 돌아오는 15시간 기차 여행 내내 소중히 잘 챙겨와서, 고이 잘 말려서, 줄기까지 아껴가며 참 잘 썼지요 ;-) 불쑥 생각이 나서 찾아보니 그때 그 여행의 기록이 블로그에 남아있네요. 너무나도 즐거웠던 기차여행과, 마음 따뜻한 친구들과 함께 한 시간, 온통 좋은 추억들만이 그득했어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이렇게 쭉 그리워하고 있답니다.

 

https://blog.naver.com/vertciel/221370732906

 

https://blog.naver.com/vertciel/221354711801

 

 

다시 홀리바질 이야기로 돌아와서 ^^; 아주 오래전 인도에서도 홀리바질 차를 접했었는데, 그때는 이 향기가 그렇게 좋은지 몰랐거든요. 나중에 미국에 가서도, 일부러 이름난 유기농 허브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홀리바질을 주문했는데, 제가 알던 그 향기와 많이 달라서 당황했습니다. 아마 직접 키우고 거둬서 자연스럽게 말린 허브와, 그리고 대량생산되어 기계로 빨리 건조시킨 허브의 차이일 것 같아요. 햇볕과 바람으로 천천히 말려진 허브에는 그 향이 온전히 남는데, 아주 많은 양이 기계로 한꺼번에 다뤄지면 향이 쉽게 날아가버리는 게 아닐까.. 아직 건조기를 직접 써보지 않아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제 느낌에는 그래요. 지금은 건조기 없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다루는 이 흐름이 제게 알맞다고 여겨져서, 앞으로도 쭉 이렇게 이어가보려 합니다. 언젠가는 지금 이 생각이 또 다른 쪽으로 바뀌게 될지도 모르겠지만요.. ;-)

 

 

 

듬성듬성한 대나무 채반 위에 손수건을 널고 그 위에 허브를 얹어 말립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엔 보자기를 위에 덮고 집게로 집어놓아요.

 

 

잎사귀 뒷면에 보랏빛 무늬가 있는 홀리바질, 참 예쁘지요 ;-)

 

 

예전에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다가 '정말 그래요. 맞아요!' 후다닥 달려가 헤세 아저씨의 손을 마주잡고픈 구절을 만났어요.

"이제 벌써 보리수꽃이 다시 피어나는 때가 되었다. 그래서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힘든 일들이 다 끝나간 저녁때가 되면 부인네들과 소녀들이 보리수들이 있는 곳으로 와 사다리를 타고 나무 가지 위로 올라가서 보리수 꽃을 바구니 하나 가득 땄다. 그들은 그 꽃으로 나중에 누가 몸이 아프거나 어려운 일에 처하면 약으로 쓰일 차를 만든다. 그들이 옳다. 이 경이로운 계절의 따스함과 햇볕과 기쁨과 향기가 어찌 쓸모없이 사라져서야 되겠는가? 꽃이나 어디 다른 데에 그런 것이 응축되어 손에 닿을 곳에 매달려 있어서, 나중에 춥고 험한 시기에 우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 그것으로부터 위로를 받아서는 왜 안 된단 말인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한 주머니씩 가득 담아서 아쉬울 때를 위해 보관해둘 수만 있다면!_ 헤르만 헤세, <보리수꽃> 중에서, 1906년

 

요 며칠 내내 마당 텃밭의 허브들을 거두면서, 산길에서 산초나무를 발견하고 잎사귀들을 모아오면서, 그리고 작년 여름 오사카에서 거둬온 어성초와 제라늄을 다시 꺼내 옮겨 담으면서 이 구절을 떠올리고 되새겼습니다. 제 손길을 더해 거두지 않고, 자연 그대로 두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흙으로 돌아갔을 허브들인데, 그런 자연의 흐름에 제 손길이 더해졌기 때문에, 잎사귀들이 바로 흙이 되지 않고, 그 대신 마른 약초가 되어 쓸모 있는 곳에 가서 쓰입니다. 유유히 흘러가는 자연의 순환, 그 큰 흐름에 살며시 인간의 손길과 노력이 끼어들면서, 그 흐름을 다른 갈래로 바꿔냅니다. 아니, 아예 바꾼다기보다는.. 흐름을 늦춘다는 표현이 알맞을까요. 약초가 되어 어딘가로 가서 잘 쓰이고 난 다음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니까, 흐름을 살며시 늦추어서 그 쓸모를 늘린다고 봐야 할까요. 아무쪼록, 헤세의 표현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한 주머니씩 가득 담아서 아쉬울 때를 위해 보관' 하는 이 일이 참 흥미롭고 또 신기하구나, 거듭 생각했습니다. '기술'이라고 하면 언제나 속도를 더 빠르게 하고, 더 효율적으로 만들고,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지요. 허브에서 쓰는 '기술'은 자연의 원래 속도를 오히려 더 늦추기도 한다는 게, 그러면서 그 늦춰진 속도 덕분에, '아름다운 것들'이 그냥 사라져버리지 않고 우리에게 위로와 치유를 안겨준다는 게,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첫 허브편지가 너무 길어졌네요 ;)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허브 이야기, 즐겁고 재밌고 흥미로운 허브 세계의 구석구석들을 어떤 식으로든 널리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고 오랫동안 쭉 생각해왔는데, 요즘 한창 준비하고 있는 전시 작품을 위한 인터뷰가 작은 계기가 되어서, 불쑥 '허브편지'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서 이렇게 쭉 적어보게 되었네요. 가까운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이 조근조근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저는 퍽 즐거웠는데, 읽는 분들은 어떠셨을까요? 앞으로 얼마나 자주, 또 어떤 형태로 이 '허브편지'를 이어가게 될지.. 아직은 아이디어가 몽글몽글한 순두부처럼 막연-한 느낌이지만, 좀 더 마음을 모으고 잘 가다듬어보겠습니다. 허브에 대해 궁금한 점, 더 알고픈 것들, 편지를 읽으면서 든 생각.. 무엇이든 답신을 전해주신다면 더더욱 기쁠 거에요. (suhee@finalstraw.org) 물론 그러지 않고 그냥 쭉 읽기만 하셔도 괜찮고요 ;-)

 

 

그럼, 다음번 허브편지에서 다시 반갑게 만나요!

안녕~ 

 

 

 

'허브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날의 허브편지  (0) 2022.11.05
이른봄의 허브편지  (0) 2022.03.19
한겨울의 허브편지  (0) 2022.01.18
초가을의 허브편지  (0) 2022.01.10
Posted by 솔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