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이야기2023. 8. 21. 17:42

월간 일류도시대전 7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더위를 쫓는 시원한 민트

풍부한 ‘멘톨’ 성분으로 상쾌함을 선사하는 여름의 허브

 

 

여름철이면 특히 인기가 치솟는 허브가 있다. 상쾌함과 산뜻함, 청량감을 안겨주는 민트가 그 주인공이다. 민트 특유의 시원한 향기는 그저 들이마시기만 해도 콧속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바로 ‘멘톨’이라는 약효성분 때문이다. 치약, 가글, 사탕, 껌, 아이스크림.. 일상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민트의 유래, 역사, 효능, 사용법을 꼼꼼하게 살펴보자. 자세히 알고 나면 무더운 이 여름 시원한 민트와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민트(mint)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 속 요정 ‘민테’의 이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분류학적으로는 꿀풀과(Lamiaceae) 박하속(Mentha)에 약 20여 종의 민트들이 속해 있으며, 교잡으로 인한 수천 가지의 변종들이 존재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민트 종류로는, 워터민트와 스피아민트의 교배종인 ‘페퍼민트‘, 껌 이름으로 친숙한 ‘스피어민트‘, 은은한 사과향이 나는 ‘애플민트‘가 있다. 이외에도 잎 바깥쪽에 하얀 띠가 있는 ‘파인애플민트‘, 시트러스 향기가 풍기는 ‘오렌지민트‘, 초콜릿처럼 짙은 빛깔에 은은한 초코향이 나는 ‘초코민트‘, 약성이 매우 강해서 식용으로는 쓰지 않는 ‘페니로열민트‘, 그리고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자라온 ‘박하‘ 등이 널리 재배되고 있다. 이중 박하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면, ‘민트’의 우리말 이름이 ‘박하’여서 ‘박하속’이 되었는데, 이와 동시에 ‘박하’는 학명 Mentha canadensis 라는 ‘박하속’ 안에 있는 하나의 종을 의미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이 ‘박하’의 영어 이름은 Canada mint, American wild mint, East Asian wild mint, Chinese mint, Japanese mint 등으로 몹시 다양하며, 영어로 ‘Korean mint‘는 박하가 아니라 방아(배초향)을 뜻한다. 방아는 꿀풀과 배초향속으로 박하와는 사촌지간으로 볼 수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민트의 약효를 알고 필요한 곳에 적절히 활용해왔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 안에서도 발견되었고, 기원전 1550년 작성된 ‘에버스 파피루스‘는 민트를 소화제로 기록했으며, 로마인들은 연회장 장식 및 식후 음료로 민트를 활용했다고 한다. 중세 유럽 의학서에는 민트를 위장 질환의 치료제 및 구강 세정제로 처방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영국의 약초학자 니콜라스 컬페퍼는 1653년 발행된 의학서 ’The Complete Herbal‘에서 치통, 딸꾹질 등 40가지가 넘는 질병에 민트를 처방했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민트를 활용해왔다. 중국 송나라 시대의 의서인 ’본초도경‘은 신라인들이 박하를 재배하여 차로 달여 마신다고 기록하였으며, ’본초강목‘에서는 ’두통을 다스리고 중풍을 없애며 피로를 풀어주는 작용‘을 한다고 소개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도 박하를 "몸에 쌓인 열을 내려주고 땀을 내어 체내 독소를 배출하는 효능이 있다"고 다루었다.

 

동서양 조상들의 지혜를 이어받아, 우리도 올 여름 민트를 적극 활용해보자. 배가 아플 때, 속이 더부룩할 때, 체한 기분이 들 때, 딸꾹질이 날 때 등등 모든 종류의 위장 질환에 민트를 활용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멘톨을 비롯한 여러 약효성분이 위벽과 장벽의 근육을 진정시켜 소화불량을 완화시키며, 담즙 분비를 촉진함으로써 지방의 소화를 돕기 때문이다. 소화에 뭔가 문제가 있을 때, 민트 생잎 혹은 건조된 잎을 준비하여 넉넉한 양을 진하게 우려 마시면 확실히 속이 편안해질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인한 통증에도 민트가 유익한 효과를 보였다고 한다. 단순하게는 그저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이로움을 누릴 수 있다. 민트는 기억력과 주의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 또한 염증을 완화시키는 작용을 해서 피부에 바르면 발진을 진정시키고 냉각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열을 낮추는 성질로 인해 감기 및 인후염에 대한 치료제, 통증을 낮추는 역할로도 사용된다. 이처럼 치료 목적으로 민트를 활용할 경우, 약효성분이 고도로 집약되어 있는 에센셜오일(정유)을 사용하면 편리하지만, 절대 내복하거나 과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임산부, 영유아, 복용중인 약이 있는 경우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 상담하도록 한다.

 

한편, 부엌에서 민트는 이국적인 요리 재료가 된다. 무더운 지중해 및 중동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민트의 시원한 개성을 잘 활용해왔고, 그중에서도 특히 모로코는 전 세계 페퍼민트 생산량이 83%를 차지할 정도의 민트 대국이다. 개인적으로도 오래 전 중동 지역을 여행하던 때, 민트 생잎을 유리잔 가득 채워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 막 우려낸 민트차를 마셨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날씨는 너무 덥고 컵은 잡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데, 후후 불어가며 민트차 한 모금을 마시자마자 곧바로 청량감과 시원함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던 ‘이열치열’의 원리를 먼 나라에서 만났다는 게 신기하기도 반갑기도 했다. 이후로도 민트를 넣은 커피, 시원한 민트 레모네이드, 민트 생강차 등등 여러 민트 음료를 맛보며 점점 더 민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다양한 민트 레시피 중에서, 우리나라의 밑반찬처럼 인도 요리에 곁들여지는 사이드메뉴 ‘라히타’, 그리스 요리에서 소스로 쓰이는 ‘짜즈키’를 변형한 우리 집의 여름 반찬 레시피를 하나 소개한다. 재료는 민트, 오이, 플레인 요거트와 소금, 올리브유가 전부이다. 얇게 썬 오이를 살짝 소금에 절였다가 물기를 제거한 후, 요거트에 섞고, 잘게 썬 민트를 얹어, 올리브오일을 조금 뿌린다. 담담한 빵에 얹어 먹어도 좋고, 그리스에서처럼 고기 요리의 소스로 곁들여도 잘 어울리는 산뜻한 포인트가 된다.

 

민트는 재배도 무척 쉬운 편이다. 허브들 중에서 가장 키우기 쉬운 허브로 손꼽힐 정도로 민트는 번식력이 뛰어나고 강인하다. 혹시 밭에서 키울 경우에는 민트가 너무 많이 번져나가 다른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하기도 하므로, 별도의 용기를 땅속에 묻은 후 그 안에 심는 걸 권하기도 한다. 또한 다른 종류끼리 교잡이 쉽게 일어나는 편이어서 여러 종류의 민트가 있다면 나란히 심지 않도록 한다.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는 민트에 대해 “향기만으로도 영혼을 회복시키고 상쾌하게 하며, 맛은 식욕을 자극한다."고 적었다. 여름날 무더위로 몸도 마음도 쉽게 지치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허브가 아닐까. 민트와 더불어 모두 건강하고 상쾌한 여름을 맞이하길 바란다.

 

글 강수희 (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bear.tiger.herb)’와 ‘코너샵(@hi_corner_shop)’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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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이야기2023. 8. 21. 17:08

월간 일류도시대전 6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꽃의 여왕, 장미

역사 속에서 가장 사랑받아온 꽃 

 

화사한 봄꽃들이 저물고, 초록빛이 짙어가는 초여름, 거리 곳곳의 담장에는 짙은 와인색 장미가 풍경을 수놓는다. 화려한 빛깔과 짙은 향기로 누구에게나 인기 만점인 장미도 자세히 알고 보면 ‘허브’, 다시 말해 ‘약이나 향신료 등으로 사용하는 식물’로 분류 가능하다. 정확한 쓸모를 잘 배워두면, 장미의 모습과 그 향기를 음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거두어서 실제 생활 속에서 이롭게 활용할 수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꾸준히 사랑받아온 ‘꽃의 여왕’ 장미의 역사와 활용법에 대해 다뤄본다.

 

“이름이 뭐가 중요할까? 그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장미는 똑같이 달콤한 향기가 날 것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구절이다. 장미를 몹시도 사랑한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들 곳곳에 총 50여 회 이상 장미를 등장시켰고, “Of all the flowers, me thinks a rose is best.” (모든 꽃들 중에서, 나는 장미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라는 말을 남겼다. 이렇듯 장미가 시인과 예술가들, 아니 모두의 칭송을 받으며 주목받아온 역사는 매우 넓고도 깊다.

 

기원전 2,000년 전 바빌로니아로부터, 고대 이집트, 그리스, 페르시아, 중국 등등 세계 곳곳의 고대 문명들마다 장미가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자신이 가는 곳 어디에서나 장미향을 맡고자 했고, 궁전을 장미로 가득히 채웠다. 로마에서도 장미가 큰 인기를 끌어서 대규모 공공 장미 정원이 만들어졌고, 승리한 군대를 장미꽃잎을 뿌리며 맞이했다. 폭군 네로는 분수대에서 장미 향수를 뿜게 했고, 장미 푸딩과 장미향 술을 즐기며 장미를 채운 베개를 썼다고도 한다. 로마가 멸망한 후 유럽에서는 사치와 호화로움의 상징이었던 장미의 인기가 살짝 수그러들었지만, 중동과 페르시아에서는 꾸준히 장미의 인기가 이어졌다. 11세기 초 페르시아의 철학자이자 의사였던 이븐 시나는 장미꽃잎에서 에센셜오일을 추출하는 수증기 증류법을 확립했고, 이는 아로마테라피의 시초가 되었다.

 

한편 중세 유럽에서는 왕가의 문장으로 쓰이며 ‘장미전쟁’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은 전 세계에서 200여 종이 넘는 진귀한 장미들을 수집하여 대규모 장미원을 세웠고 그 기록을 그림으로 남기도록 했으며 품종 개량을 지원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유럽 장미에 아시아 장미를 교배시킨 새로운 품종이 개발되었고, 이를 시점으로 무수히 많은 장미 품종 개발이 이어졌다. 활발한 육종 덕분에 장미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종류가 많은 식물 중 하나로, 해마다 200종 이상의 새로운 품종이 개발되고 있다.

 

오랜 역사에 걸쳐 이토록 커다란 사랑과 관심을 모아온 장미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겹겹이 겹쳐진 아름다운 꽃잎과 다채로운 빛깔, 그윽하면서도 깊은 향기, 뾰족한 가시와 우아한 자태 등등 이루 다 꼽기 어려운 장점들이 많지만 알고 보면 장미가 지닌 건강상의 효능 역시 뛰어나다. 항산화물질인 플라보노이드를 비롯하여, 비타민 A, B, C, E, K와 칼슘, 철, 인을 포함한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체내 섭취할 경우 염증을 감소시키고 면역력을 높여준다. 또한 세포 조직과 혈관을 수축시키는 수렴작용을 해서, 장미 성분이 함유된 물질을 피부에 바를 경우 주름 개선, 세포 재생 등 피부 건강에도 이로운 영향을 미친다.

 

식용으로도 장미를 알차게 활용할 수 있다. 싱싱한 장미꽃잎 그대로 샐러드에 넣으면 눈과 혀가 동시에 즐거워지고, 다른 허브나 과일과 함께 찬물에 오래 우려서 가벼운 느낌의 허브차로 마실 수도 있다. 살짝 말린 꽃잎을 따뜻하게 데운 꿀에 넣고 약 2주간 우려내면 장미향이 잘 배어나는데, 이 꿀을 차나 디저트에 곁들이면 은은한 장미향이 잘 어울린다. 또한 꽃잎을 식초에 넣어서 추출하면 장미의 약용 성분이 잘 우러난 장미향 식초가 되는데, 샐러드드레싱으로 활용하기에도 좋고, 희석시켜 헤어린스로 쓸 수 있다. 꽃잎을 습기가 남지 않게 바짝 잘 건조시키면 오랫동안 두고 마실 수 있는 꽃차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장미꽃잎 단독으로 마시기에는 향이 미약한 편이어서, 다른 허브들, 또는 홍차나 향신료와 잘 섞으면 풍미가 뛰어난 나만의 차를 만들 수 있다.

 

꽃집에서 판매하는 절화의 경우, 생산 과정에서 약품처리가 되었을 확률이 높으므로 식용으로 추천하지 않는다. 매연 등의 오염물질이 없는 곳에서 직접 채취한 신선한 장미, 또는 약재상에서 판매하는 건조된 장미꽃잎을 식용으로 쓸 수 있다. 채취 시기는 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때, 아침 이슬이 마른 직후의 오전 나절이 가장 좋고, 꽃봉오리 전체를 거두기보다 꽃잎 낱장을 따로 거두는 게 좋다. 건조시키기 더 쉬울 뿐 아니라, 남겨진 꽃 안쪽 부분이 익으면 열매가 되기 때문이다. 흔히들 장미와 별개라고 알고 있는 ‘로즈힙(rosehip)’이 바로 장미의 열매인데, 비타민이 매우 풍부해서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건강음료나 시럽, 디저트의 재료로 활용되어 왔다.

 

대전의 명물 한밭수목원에는 100여 종이 넘는 장미들이 모인 ‘장미원’이 있다. 각 구역의 장미들마다 이름도 모양도 빛깔도 다 달라서 하나하나 들여다볼수록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고, 짙은 장미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면 온몸의 세포가 깨끗이 정화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화사하게 피어난 장미들 사이에서,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느긋하게 걷는 6월의 산책,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대전 시민 모두가 향기로운 장미와 함께, 더욱 행복한 초여름을 맞이하시기를 기원한다.

 

 

글 강수희 (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bear.tiger.herb)’와 ‘코너샵(@hi_corner_shop)’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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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이야기2023. 5. 2. 18:09

월간 일류도시대전 5월호 _ '허브이야기' 칼럼

 

 

바다의 이슬, 로즈메리

기억력을 높여주는 서양 허브의학의 ‘만병통치약’

 

 

‘허브’ 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연둣빛 허브차, 향기로운 에센셜오일, 아로마테라피 마사지, 실내용 디퓨져, 기능성 화장품과 건강식품... 허브 사용의 여러 갈래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가까이에서 허브를 만날 수 있는 수단은 식물원이나 꽃집에서 판매하는 작은 허브 화분을 통해서일 것이다. 글쓴이 역시 어린 시절 동네 화원에서 작은 화분을 구입하면서 허브를 처음 접했다. 크기도 작고 영 수수해 보이는데, 살짝만 잎을 스쳐도 산뜻한 향기가 강렬하게 풍겨온다는 게 무척 신기하고 놀라웠다. 바질, 민트, 라벤더, 로즈메리..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허브들 중에서, 가정에서 재배하기에 어렵지 않은 편이고, 다년생이어서 오랫동안 두고 기를 수 있으며, 생활 속에서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로즈메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로즈메리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이슬(ros)+바다(marinus), 즉 ‘바다의 이슬'이라는 뜻으로, 바닷가에서 잘 자라는 데다, 연푸른 빛깔의 작은 꽃들이 활짝 핀 모습이 마치 이슬이 맺힌 모습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기원전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석판에 언급되었을 정도로 인간과 함께해 온 역사가 매우 깊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도 로즈메리 가지가 발견되었으며, 그리스의 식물학자 디오스코리데스가 쓴 의학서 ‘약물지(De Materia Medica)’에도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서기 800년 경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대제는 ‘영지 관리에 관한 법령집’을 발표하면서 로즈메리를 포함한 100여 종의 허브와 채소, 유실수를 심도록 권장하였는데 이는 유럽 전역에 허브가 더 널리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오랜 시간에 걸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로즈메리는 특별한 순간의 상징적 존재로도 활용되었다. 맹세, 서약, 충실함의 징표로써 결혼식에 쓰이며 신부의 화관을 장식했고, 장례식에서는 ‘망자에 대한 영원한 기억’의 의미로 관 위에 놓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에도 등장한다.

 

이처럼 이야기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로즈메리에는 기억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몸 전체의 순환 작용을 활발하게 하며, 특히 뇌에 혈액과 영양, 산소를 공급하여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신경세포의 사멸을 줄여 알츠하이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강력한 항염증,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고, 근육통을 완화시키며, 혈압과 혈당을 알맞은 범위로 조정한다. 소화 기능 및 간 기능을 원활하게 해서, 팽만감 및 경련을 완화시키고 지방 연소를 촉진시켜 식사 후 마시는 차로도 적합하다. 항산화 및 수렴 작용은 모발과 피부의 손상과 노화를 막아주며, 상처의 치유에도 도움이 된다. 17세기 영국의 약초학자 니콜라스 컬페퍼는 “모든 종류의 감기, 건망증, 두통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로즈메리를 설명하기도 했다.

 

꿀풀과에 속하는 다년생 상록관목인 로즈메리의 고향은 지중해 연안,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지만 추위에도 강한 편이어서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한국의 추운 겨울에도 실내에 두고 잘 관리한다면 여러 해에 걸쳐 계속 키울 수 있다. 가뭄에도 강한 편이어서, 물주기를 자주 깜빡하는 식물 집사에게도 알맞다. 다만 과습을 매우 싫어하므로 물을 너무 자주 주지 않는 편이 좋고, 실내에 둘 경우엔 반드시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곳이어야 한다.

 

수확한 로즈메리 잎은 생잎 그대로, 혹은 잘 말려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향이 무척 강한 편이어서, 요리에 쓸 때는 아주 적은 양부터 시작해서 필요한 정도로 양을 조금씩 늘려가는 편이 좋다. 모든 종류의 육류와 잘 맞는 편이지만 담백한 느낌의 가금류, 그리고 뿌리채소와 잘 어울리는데, 허브를 활용한 요리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보자에게 가장 추천하는 메뉴는 간단한 ‘로즈메리 감자구이’이다. 한입 크기로 잘게 자르거나 채썬 감자에 버터나 오일, 적당량의 소금과 후추를 버무린 후, 로즈메리 잎을 고루 뿌려서 오븐이나 프라이팬에 구워내면 된다. 늘 먹는 밥을 독특한 방식으로 조리해보고 싶다면 ‘로즈메리 밥’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평소처럼 밥을 하되, 손가락 길이의 로즈메리 마른 가지 2~3개와 소금 몇 자밤, 올리브 오일을 넉넉히 둘러 조리하면 서양 요리에 잘 어울리는, 로즈메리 풍미가 향긋한 밥이 된다. 잘 마른 로즈메리 가지를 식초에 넣어 3~4주 동안 우리면 ‘허브식초’가 되는데, 샐러드 드레싱으로 적합하다. 같은 방식으로 오일에 넣어 우린 ‘허브오일’ 역시 파스타용, 드레싱용으로 두루 활용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자세한 배경이나 활용법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로즈메리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하나의 허브 안에 이토록 오랜 역사와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허브를 생활 속에 가까이 두고, 그 이로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수천 년 넘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대대로 쭉 이어져온 ‘식물과 함께 하는 삶’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이 이끌린다면, 로즈메리의 산뜻한 향기와 함께 당신만의 첫 발걸음을 시작해보면 어떨지.

 

 

글 강수희 (허벌리스트.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허브의 이로움을 ‘곰과 호랑이 허브(@bear.tiger.herb)’와 ‘코너샵(@hi_corner_shop)’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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